매일신문

'미술 사랑에 푹 빠진' 장하석 대구 달구벌신협 전무

석재 서병오 기념관 세우는 게 꿈

달구벌신협은 최근 2년간 미술품을 구입해 조합원들과 함께 감상하는 등 문화 경영을 하고 있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장하석 달구벌신협 전무는 언젠가 석재 서병오 기념관을 열고 싶어 한다.
달구벌신협은 최근 2년간 미술품을 구입해 조합원들과 함께 감상하는 등 문화 경영을 하고 있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장하석 달구벌신협 전무는 언젠가 석재 서병오 기념관을 열고 싶어 한다.

업무가 한창인 대구 수성구 매호동 달구벌신용협동조합 본점 매장. 벽에는 김수명, 권기철, 변종하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돈' 얘기로 딱딱한 사무실이 그림 덕분에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고객들이 순서를 기다리는 홀에는 600만원 짜리 아트북이 놓여 있다. 원화와 가까운 색으로 수준 높은 작품으로 묶인 이 아트북은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넘겨볼 수 있도록 공개돼 있다. 손때가 묻어도 관계없다. 비싸기 때문에, 가치가 높기 때문에 진열장 안에 놓인 보통의 아트북과는 다르다. 옆에 있는 뻥튀기 기계에서 수시로 나오는 뻥튀기보다 아트북이 더 인기 있다. 특히 아이와 함께 온 엄마들은 꼭 한 번 넘겨본다.

달구벌신협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달구벌신협은 2년 전부터 미술품을 사들이고 있다. 달구벌신협 장하석 전무가 2년간 모은 작품 수는 50여 점. 주로 지역 작가들 작품 위주다.

"조합원이 2만9천 명인데, 조합원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싶었지요. 요즘은 문화에 대한 욕구가 크니까요. 그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미술 작품을 보여드리기로 했어요. 지역 작가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장 전무의 사무실에는 '뒤샹' 등 미술에 관한 책이 여러 권 놓여 있다. 그는 실제로 미술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서점에 가서 80여 권의 미술 관련 책을 구입한 후, 그것을 모조리 읽으면서 미술을 배웠다.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도 빠짐없이 감상했다. 발로 뛰며 배운 미술에 관한 지식과 사랑은 꽤 크다.

"딱 반 발짝 앞서가려 노력해요. 너무 앞서가면 조합원들이 '이게 도대체 뭐냐'고 반감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지역 미술가와 구상 중심의 작품 위주로 작품을 선정한다. 이렇게 구입한 작품은 대구시내 6개 매장에 고루 걸려 있다.

달구벌신협은 내친김에 아예 갤러리를 오픈했다. 본사 건물 1층에 커피숍과 함께 갤러리 '09264'를 문 연 것. 이름이 된 번호는 신협 인가 번호다. 이곳에선 14일까지 이영수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 공간 자체는 66㎡(20여 평)이지만 옆의 커피숍 벽에도 작품을 내건다. 커피숍 역시 신협 회원들에게 30%를 할인해주는 달구벌신협 직영 매장.

빽빽한 아파트 숲에 들어선 갤러리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몇일 전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들어왔어요. 작품 앞에 한참을 서 있더니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작품이 너무 좋다면서. 주택가에 위치한 갤러리의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산 규모 3천400억원, 18년의 역사를 지닌 달구벌신협은 꾸준히 조합원을 위한 서비스를 실시해왔다. 올해엔 장학재단도 설립할 계획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집 고쳐주기 봉사, 저소득층 학생 교복 사주기 등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커피숍 역시 바리스타 과정을 직접 실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저렴한 가격에 운영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로스팅 기계를 들여놓은 커피숍 '09264'는 맛있는 커피로도 입소문이 나고 있다.

무엇보다 장 전무는 큰 뜻을 품고 있다. 석재 서병오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

"최근에도 석재 선생님 작품을 10폭 구입했어요. 석재 선생님 같은 큰 인물을 두고도 미술관 하나 없는 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10년쯤 후엔 기념관 건립이 가능하도록 작품을 모으고 있어요."

장 전무는 인연이 닿으면 1천300㎡(400여 평)의 지하 공간도 설치미술 작가나 도예 작가 등의 작업실로 내놓을 생각이다. 미술에 푹 빠진 기업의 사랑이 향기롭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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