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작품이 걸린 접견실과 대리석 사무실일 것이라는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직원의 안내로 들어간 집무실은 6.6㎡(두 평) 남짓했다. 창가 쪽에 쌓인 책들, 책상 왼쪽 위로부터 오른쪽 대각선으로 쭉 놓인 서류철들, 책장에 꽂힌 업무 매뉴얼, 상패. 기념 액자….
집무실인지 연구실인지 도통 구분이 가지 않는 그곳에 앉아 있으니 직원들의 웃음소리와 업무 이야기, 잡담까지 여과 없이 귀에 와 박혔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항상 열려 있다는 집무실에서 설도원(55) 홈플러스㈜ 부사장은 "저는 직원 중 한 명(그의 표현은 one of members)"이라며 "감독, 코치, 선수는 한팀이며 항상 교감하고 소통해야만 정서적 유대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큰 키에 시원한 이목구비, 중저음의 목소리에 달변이기까지 한 그를 보자 '신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실제로 1987년 삼성물산에 입사, 유통 부문 마케팅'홍보부장을 지낸 그는 삼성테스코 마케팅&홍보이사, 마케팅&PR부문장을 거치면서 '홍보 마케팅계의 신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난해 5월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언론 홍보, 사회 공헌, 평생교육스쿨 운영, 협력사와의 상생 등 긍정의 가치 추구에서부터 정부 규제와 언론 보도, 법적인 위기에 대한 리스크 관리까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도 많은 일이 그의 임무다. 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과 함께 홈플러스㈜ 공동대표이사이자 홈플러스e파란재단 사무총장, e파란어린이축구단장이라는 역할도 맡고 있다. 한마디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모든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홈플러스와 어린이축구단은 언뜻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묻자 설 부사장은 "축구팀이 아닌 기업이 어린이축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최초"라며 "골프가 아니라 가장 국민적이고 서민적인 어린이스포츠에 힘을 보태자는 생각에서"라고 말했다. 이을용 전 국가대표 선수가 감독이며 영국축구협회 코치진이 방한해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다. 그간 활동한 내역과 사진을 일일이 설명하는 그의 손끝에서 애정이 묻어났다.
유통은 트렌드다. 어떻게 흐름을 좇는지 물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답과 "고객은 항상 옳다"는 답이 돌아왔다. 젊은이들이 찾는 모든 곳이 바로 '현장'이라는 그는 "따라만 해서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고도 했다.
"물론 책을 많이 읽죠. 하지만 우리가 나아갈 바는 고객의 머릿속, 가슴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고객을 얼마만큼 알까?'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통과 관련된 산업, 사회현상을 항상 주시해야 합니다. 세계시장의 변화에 촉수를 드리우고 새로운 가치와 이념까지도 읽어야 합니다."
그는 이제 유통업은 복합산업(multi-industry)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 기존의 기업행위로는 고객으로부터 어떠한 인정도 사랑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완전히 고객 속으로 들어간' 기업 경영 전략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말단사원에서부터 대표라는 최고위직까지 그를 이끈 가치관이 뭘까 궁금했다. "거창한 것은 없다"고 웃은 설 부사장은 "맡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가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단순한 진리가 세월이 쌓이면서 그를 있게 했다. 누구에게나 적용되지만 지키기는 결코 쉽지 않은 얘기다. "신입사원에게 짐 나르는 일이 주어집니다. '어, 이 업무는 내 일이 아닌데'라고 여기는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하죠. 그러면 미래는 없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에게 대구 칠성동 홈플러스 1호점은 향수(鄕愁)다. 비산동에서 만평동까지 초등학교 때 걷던 그 길던 길, 논과 밭, 친구들과의 재잘거림이 이 1호점을 있게 했다. 지역 후배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그는 "재목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스펙에 눌리지 말고 가능성을 보여라"고 주문했다.
대구 출신인 설 부사장은 인지초교, 경북대사대부중, 경북고를 졸업한 뒤 중앙대를 거쳐 연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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