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大幹 숨을 고르다-황악] 3.괘방령∼운수봉∼비로봉

매서운 칼바람 가파른 계단길… 정상 오르는 가장 힘든 코스

황악산 능선길에 눈이 내려 등산로가 더욱 선명하다.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두대간 종주길에 오른 산꾼들이 부지런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황악산 능선길에 눈이 내려 등산로가 더욱 선명하다.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두대간 종주길에 오른 산꾼들이 부지런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황악산 정상을 알리는 자연석으로 된 표지석과 백두대간 해설판이 산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황악산 정상을 알리는 자연석으로 된 표지석과 백두대간 해설판이 산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설렘. 처음이라는 말은 항상 가슴을 설레게 한다. 첫만남, 첫사랑, 첫눈….

황악산의 첫걸음을 괘방령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백두대간(白頭大幹) 길에서 시작한다. 괘방령을 찾은 날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로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주눅 들게 한다. 차에서 내려 수은주를 바라보니 영하 7℃다. 매서운 바람까지 불어 코끝이 찡해온다. 해발 300m에 불과한 이곳에서 이럴진대 1,100m를 넘는 비로봉 정상은 얼마나 추울지 걱정이 앞선다. 괘방령은 김천과 충북 영동을 연결하는 옛길이다. 주로 선비들의 과거길로 장사꾼들의 상로(商路)로 이용됐으나 지금은 교통로의 명성은 많이 퇴색됐다.

◆겨울산을 오르니 칼바람이 매섭다

몸을 추슬러 길을 나서자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진눈깨비까지 뿌리기 시작한다. 산장을 버려두고 산을 조금 오르니 오른편 영동 쪽으로 매일유업 초지가 눈에 들어온다. 넓게 조성된 초지에는 잔설이 군데군데 쌓여 있다. 초지 한쪽을 지키고 있는 억새가 강풍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고 있다.

10분을 오르니 삼거리 오솔길과 만난다. 이제부터 급경사가 시작된다는 일행의 말이다. 산의 초입(初入)인 때문인지 각종 산악회에서 달아놓은 리본이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백두대간 산악회' '산새들의 합창' '호산' '영남 알프스 산악회' 등 줄잡아 50여 개는 넘는 것 같다. 알록달록한 산악회 리본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재촉한다. 눈앞으로 깎아지른 절벽 같은 가파른 길이 버티고 서 있다. 황악산 등산로 중 괘방령에서 정상을 오르는 길이 가장 힘들다는 말이 실감 난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숨이 가쁘다. 등산로는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돼 있다. 하지만 경사도가 족히 60~70도쯤 되는 길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마침 이 길을 내려오는 등산객과 조우한다. 이른 새벽 우두령(질매재)에서 출발해 눈길을 5시간 걸어 이곳까지 왔단다. 반가움이 앞선다. 산을 들어서면 산에 동화돼 모두가 이웃이 되고 마음이 훈훈해지고 넓어지는 것 같다.

◆민초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산

숨 가쁜 계단길을 30여 분 오르자 추위는 어느덧 달아나고 없다. '후 후' 더운 입김이 추위를 압도한다. 고갯길을 올라 능선으로 접어들자 왼쪽으로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 김천 시가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김천의 특산품인 포도밭 비닐하우스가 겨울 햇살을 받아 이채롭게 빛을 낸다. 산 아래 봉산들판이 펼쳐지고 들판을 덮은 흰색은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 산 아래 왼쪽은 봉산 땅이요, 오른쪽은 대항 땅이다. 이들 마을을 두고 의미(?) 있는 말이 전해온다. 봉산은 양지로 살기 좋은 땅인데, 실제로는 대항 사람들이 부자로 살았다는 것이다. 이는 양지인 봉산 사람들이 눈 덮인 황악산을 보면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농사일 준비를 늦추는 반면 산 아래 대항 사람들은 봉산 쪽을 건너보면 눈이 녹고 햇살이 비쳐 부지런히 농사 준비에 나선다는 것. 이로 인해 항상 대항 사람들이 한발 앞서 농사를 지어 소득이 나았다는 것이다. 산이 민초들의 생활과 정서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지금은 봉산 사람들도 부지런하고 김천 특산품인 포도 재배로 소득이 높아 옛 얘기에 불과하다.

◆여우가 많아 여시골산

능선으로 올라서자 영동 쪽으로 불어오는 칼바람이 여간 매섭지 않다. 날리던 눈은 잦아들었다. 변화무상한 날씨다. 여시골산에 닿는다. 여우의 이곳 사투리가 '여시'다. 산 이름을 여시골산으로 그대로 쓰고 있다. 예전에는 여우가 많이 출몰했다고 한다. 능선 쉼터 바로 옆에 여우굴이라며 깊이 4, 5m가 족히 됨직한 구덩이가 파져 있다. 굴 주변은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목책과 밧줄이 둘러쳐져 있다. 나무를 하러 왔다 이상한 소리에 놀라 지게까지 내버려두고 도망왔다느니, 흰 털을 한 짐승이 나무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을 봤다고 하는 이야기를 주민들에게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는 유난히 여우와 관계된 민담들이 많이 전한다. 여우에게 홀려 밤새도록 산을 헤맸다든지, 여우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둔갑해 사람에게 해(害)를 끼친다는 얘기, 여우가 밤길에 흙을 뿌리며 따라온다 등등. 하지만 지금 여우는 산에서 모습을 감춰 동물원에서나 겨우 볼 수 있어 아쉬움을 준다.

◆경상도 기질을 닮은 산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한참을 가니 운수봉과 맞닿는다. 운수봉은 직지사 운수암의 뒷산이다. 이곳에서 북암마을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고 좀 더 나가자 운수암에서 올라온 길과도 만난다. 운수봉 아래 마련된 쉼터를 지나자 길이 한결 수월해진다. 황악산은 처음 산을 오르면 힘들지만 갈수록 완만해진다. 마치 경상도 기질처럼 처음에는 서먹하고 어렵지만 친해지면 편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직지사 등산로와 합류되면서 오르내리는 등산객도 많아졌다. 형제봉에 이르자 어느덧 정오(正午)를 가리킨다. 얼추 세 시간은 걸은 것 같다. 중간중간 쉬면서 올랐지만 체력도 많이 떨어진 느낌이다. 비로봉 정상 부근에는 내린 눈으로 얼어붙어 길이 미끄럽다. 아이젠으로 무장을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자 최고봉 비로봉이 길손을 반긴다. 정상이다. 우리나라에는 산 정상 이름으로 비로봉이 무척 많다. 대표적인 것이 금강산이고, 팔공산 소백산 오대산 등도 최고봉이 비로봉이다. '비로'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 비롯된 말로 '높다'는 뜻이다. '비로자나'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을 이르는 말이다. 이 때문에 직지사, 동화사처럼 큰 절을 품고 있는 산의 최고봉은 주로 '비로봉'으로 불린다. 이곳 비로봉에는 '황악산 정상 1,111m'라는 표지석과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마음의 빛을 밝히며 정성을 들여 쌓아 올렸을 돌탑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글'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서하복작가 texcafe@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