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던 해인 1945년 미 군정은 한국군을 창설하기로 한다. 미 군정은 한국군 창설 멤버 물색에 나섰다. 194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포병 대위로 복무한 이형근도 대상 중 하나였다. 1946년 한국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자 이형근은 대위로 입대한다.
당시 한국군의 상징인 군번 1번을 누가 받을 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선배가 많았고 희망자도 있었지만 결국 이형근에게 군번 1번이 배정됐다. "장유유서의 질서가 있는 한국사회에서 앞자리에 설 수 없다"고 거절하는 이형근에게 미 군정청 참페니 사령관은 "우리가 일본군을 재건하는 줄 아느냐? 이 군번은 맥아더 사령부에서 결정한 것이니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면서 뜻을 관철시켰다.
군인 이형근은 승승장구했고 한국군의 기초를 다졌다.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제2사단장, 제3군단장, 초대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고 1959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입바른 소리를 잘하고 강직해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육군참모총장 시절엔 중상모략에 휘말려 대통령으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았으나 끝까지 불응했다. 1920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2002년 오늘 타계했다.
김해용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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