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폭로

폭로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는 일단 어둡다. 감추고 숨기던 사실을 까발려 드러내는 데다 대개 나쁜 일이나 음모 따위가 대상이기 때문이다. 폭로는 내부에서 나온다. 사정을 모르고선 폭로는 아예 불가능하다. 그래서 폭로라는 단어에는 배신이란 말이 따라온다. 폭로 대상이 정치 지도자나 사회적 강자일 경우 사람들은 폭로 뒤의 음모를 따져본다. 배신자란 비난을 감수하면서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한다.

폭로는 일단 이목을 끈다. 폭로 내용이 대부분 부정과 불법, 비리나 부적절한 관계 등 정상을 일탈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로와 진실 찾기는 영화나 소설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한다. 007 시리즈나 본 아이덴티티로 시작하는 본 시리즈의 인기는 폭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적지 않음을 알게 한다.

폭로의 대상이 권력자를 향할 경우 파장은 엄청나다.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서 예금 계좌 원장 사본을 든 박계동 전 의원의 폭로는 전직 대통령 구속이란 후폭풍을 몰고 왔다. 폭로는 당사자를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래서 진실을 찾는 쪽과 숨기려는 사람들의 싸움은 격렬하다.

고승덕 의원의 돈봉투 폭로에 대해 여의도가 시끄럽다. 특정 계파의 기획설도 나오고 정치적 목표가 있는 음모라는 말도 있다. 직격탄을 맞을 사람들이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마뜩잖게 보는 이가 적잖다. 정두언 의원이 트위터에 남긴 '한때 누구의 양아들이라 불리던 고시남 고승덕 의원이 한나라당을 최종 정리할 역할을 할 줄이야'란 글은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폭로의 이익과 피해 중 어느 것이 큰가가 폭로의 평가 잣대가 된다. 고 의원의 폭로는 어떤 이득이 있을까. 10여 년 전 국민회의 정동영 의원이 '권노갑 최고위원을 배제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배신이란 말들이 많았다.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의원은 사석에서 '정 의원에게 술 한잔 사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론 배신일지언정 정치 발전에 획을 그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폭로의 영향은 부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고 의원의 폭로는 정치권력을 국민들에게 한걸음 더 가깝게 옮겨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배신의 결과로 우리 정치가 한걸음 나아간다면 배신은 영광의 상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서영관 논설주간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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