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예술경영' 공부가 막 입문 단계를 벗어날 즈음이다. 예술과 경영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필자는 '아른스베르크(Arnsberg) 국제여름예술제'에 기획팀으로 참가하는 기회를 가졌다. '아른스베르크'는 독일의 중부에 위치한 인구 8만여 명의 소도시로 루르(Ruhr) 강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전형적인 중세 유럽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특히 해마다 8월에 이곳에서 개최되는 '국제여름예술제'는 지역민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온 여름휴양객과 예술가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도심예술축제이다.
'아른스베르크 예술제'는 예술 전반에 걸쳐 개설되는 50여 개의 강좌와 워크숍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참가자의 대부분은 아마추어 예술가들이거나 평소 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던 예술 애호가들로 채워지며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강사로 초빙된다. 수강생들은 전문예술가 못지않은 열정으로 강사들과 함께 작품을 구상하고 기법을 배우며 본인도 미처 알지 못했던 예술적 잠재력을 발견하기도 하고 이제껏 소극적이었던 그들의 작업을 밖으로 끌어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용기를 갖게 되기도 한다. 강사를 흔쾌히 자임한 예술가들도 단지 가르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과 예술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로 서로 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며 함께 고민하고 함께 열광한다.
그뿐만 아니라 축제 기간 동안 시청사 앞의 분수대광장, 여름휴가로 비어 있는 상가, 교회, 도서관, 공원 그리고 중세 독일의 전통적인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 등 도심 곳곳은 무대와 전시장이 돼 사람들과 예술작품으로 넘쳐난다. 저녁이면 방문객들, 예술가, 참가자들이 카페와 레스토랑을 가득 메우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예술은 더 이상 일방적인 통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고 소통하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여름예술제'는 좀 더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과 의미 있는 휴가를 보내기 원하는 사람들을 '아른스베르크'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고 그로 인해 중세 독일의 옛 도시로 대표되던 정적인 이미지에 보다 생기 있고 활기 넘치는 매력을 더해 도시의 이미지 향상에 따른 지역 홍보와 경제적인 이익의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른스베르크 국제여름예술제'는 도시 마케팅과 연계된 예술경영의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표본이지만, 필자가 받은 강렬한 인상은 오히려 2천여 명에 이르는 수강생들이었다.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었고 그들이 참가한 50여 개의 강좌는 대부분 우리가 기초예술(순수예술)이라고 부르는 분야였다. 황금 같은 여름휴가를 첼로의 현 위에서, 또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돌을 깎으면서 보내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예술에의 순수한 열정과 애정이 기초예술의 두터운 층을 이루는 문화강국 독일의 토대이고 저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문화예술은 도시 인프라로 당당히 도시 활동의 근간이자 중요한 생산의 한 부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에 따라 각 도시마다 차별화되는 문화 브랜드를 통한 문화예술산업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그동안 대구가 '공연문화도시'를 표방하며 추진해 온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시립미술관 개관에 이어 문화창조발전소, 문화창작교류센터, 대구오페라재단, 시민회관 리모델링 등이 뒤를 잇고 있어 2012년 대구문화계는 더욱 분주하고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문화예술산업의 출발은 '소녀시대'가 벌어들이는 엄청난 수익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기초예술에서 시작되고 공연문화도시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문화예술의 창출자인 예술가와 향수자인 시민들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첨단 시설의 무대에 올려지는 오페라와 뮤지컬은 물론 도심에서 마주치는 거리공연, 이상화 고택에서 밤을 밝히는 젊은 시인들의 난상토론, 청라언덕에 울려 퍼지는 하모니와 작가들의 땀방울로 채색되는 문화창조발전소, 그리고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시민들과 밀려드는 방문객들까지. 흑룡의 해에 그려보는 공연문화도시 대구가 향기롭기만한 것은 새해맞이 소원풀이인가?
김아미/봉산문화회관 공연기획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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