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원의 단란한 가정, 회사의 든든한 자산

기업들, 가족친화경영 붐

천호식품 직원 김현주(39) 씨는 셋째를 출산하면서 회사로부터 출산장려금 1천220만원을 받았다. 천호식품 제공
'직원이 행복해야 기업 성과도 좋아진다'는 가족친화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이 늘고 있다. 가정과 육아 부담이 줄어들면 업무 집중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천호식품 직원 김현주(39) 씨는 셋째를 출산하면서 회사로부터 출산장려금 1천220만원을 받았다. 천호식품 제공

"행복한 가정이 회사 경쟁력의 밑거름이다."

기업들 사이에서 직원 가족을 '내 가족'처럼 돌보며 생산성을 높이는 가족친화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 흔히 직원 복지 비중이 커지면 회사의 경영부담이 가중된다고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이제는 이런 인식에 변화의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가정이 행복해야 일터가 밝아지고, 일과 가정의 균형이 최고의 생산성을 가져온다는 새로운 자각이 확산되고 있다. 직원과 더불어 함께 행복한 직장, 이상만은 아닌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일과 가정, 양립 가능한가?

지역의 자동차 부품생산업체인 ㈜에스엘은 직원 가정이 행복한 기업을 꿈꾼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목표로 자녀들에 대한 보육비와 학자금을 지원해준다. 분기당 10만원의 보육료는 기본이고, 고등학생 수업료 전액과 대학생 등록금을 지원하고 있다. 최장 2년의 육아휴직과 함께 한 여성병원과 출산지원프로그램을 위한 협약을 맺어 출산과 관련한 도움도 주고 있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휴식'은 기본이다. '일한 만큼 쉬자'는 뜻에서 하계휴가비가 지급되는 한편 최장 5일의 '리프레시'(refresh) 휴가도 주어지고 있다. 매주 수요일은 '가정의 날'로 정해 오후 5시 '칼퇴근'을 해야 한다. 직장 내에는 여성휴게실을 비롯해 축구장, 체력단련실, 농구장이 갖춰져 여가생활을 즐기려는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이 밖에 동아리활동 지원, 가족 초청 행사, 신입직원 부모 초청 행사 등도 가족 같은 기업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직원들의 주거 안정 역시 회사가 함께 고민한다. 집이 필요할 경우 저리의 자금이 융자된다. 57가구 규모의 사원아파트도 운영 중이다.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에스엘은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주최하는 '가족친화인증제'에서 대구지역 기업 최초로 가족친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대구도시철도는 올해부터 만 1세 미만의 영아를 가진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9 to 5 근무제'를 실시한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하나로 여직원들의 육아 부담을 줄여 업무에 몰입하고 출산 장려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한 것. 대구도시철도 관계자는 "기존에 1일 2회 수유시간을 제공했지만 활용도가 낮았다"며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육아시간에 대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오전 9시에 출근해 1시간 빠른 5시에 퇴근하는 근무제를 도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구도시철도는 그 외에도 육아휴직 직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고용노동부 지원금과 별도로 육아휴직수당을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 지급하고, 임신한 직원에게는 당직근무 면제와 교대근무자 통상근무 전환, 태아 검진시간 허용 등의 모성보호를 위한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회식 일정은 최소 7일 전 직원들에게 사전 공지하는 한편 불필요한 회식은 자제하도록 함으로써 개인의 건강과 가족을 배려하고 있다.

◆가족친화인증기업 갈수록 늘어

가족친화경영은 2008년 여성가족부가 '가족친화인증제'를 도입하면서 확산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가족친화인증제를 통해 '일과 가정의 조화로운 균형'을 꾀함으로써 직원의 삶의 질 제고, 기업의 생산성 향상 등을 도모할 수 있도록 가족친화제도를 모범적으로 도입'운영하는 기업을 평가해 인증하고 있다. 2008년 14개, 2009년 20개, 2010년 31개가 인증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대기업 22개, 중소기업 33개, 공공기관 40개 등 총 95개소가 선정됐다.

여성부가 시행 중인 가족친화기업인증은 ▷시차 출'퇴근, 재택 근무 등 탄력근무제 ▷배우자 육아휴직, 직장 보육지원 등 출산'양육 지원제 ▷부모 돌봄 서비스, 가족 간호휴직제 등 부양가족 지원제 ▷근로자 건강'상담 프로그램 등 근로자 지원제 등 가족친화경영을 적극 실천하는 기업들에 부여한다. 인증을 받은 기업은 고용노동부와 중소기업청에서 시행하는 9개 사업에 참여할 때 최대 5년간 가점 혜택 등 인센티브를 받는다. 인증마크를 기업 광고'홍보에 사용할 수도 있다.

지난해 '가족친화인증'을 받은 천호식품은 지난해 12월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제3차 가족친화포럼 워크숍'에서 '21세기 기업 경쟁력 휴(休) 창조경영'이라는 주제로 가족친화경영, 여가생활 지원 등과 관련해 우수사례를 발표한 바 있다. 천호식품은 근로자 본인의 건강관리와 생애 주기별 지원은 물론이고 출산 지원, 자녀 양육 및 교육 지원, 여가생활 지원 등의 다양한 가족친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 회사에서 인기가 높은 것은 출산지원금. 김현주(39) 씨는 2006년 셋째를 출산하면서 일시금으로 100만원과 함께 2년 동안 3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이 회사 최홍석 홍보실장은 "출산 지원금이 첫째는 100만원, 둘째는 200만원에 불과하지만 셋째를 낳을 경우에는 무려 1천220만원에 달하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 셋째 낳기 붐이 일 정도"라며 "자녀가 많아지면서 직원들의 웃음도 함께 늘고 직장 분위기도 밝아진다"고 했다.

◆아직 갈 길 멀다

얼핏 생각하면 기업의 복지 지출이 더 늘어나 부담이 될 것 같지만 가족친화기업들이 말하는 '변화'는 오히려 실보다는 득이 많다는 것이 증언이다. 노동생산성과 직원들의 근무만족도가 동시에 높아진다는 것.

지난해 가족친화인증기업 중 우수기업으로 선정, 여성가족부 장관 표창을 받은 엠아이케이21(터치스크린패널 검사장비 제조업체)은 "2008년부터 가족친화경영방식을 도입한 결과, 매출이 2007년 107억원에서 2008년에는 150억원으로 늘었다"고 했다.

교보생명 역시 2003년 1억3천만원이던 1인당 생산성이 2008년 1억7천만원으로 30.7% 높아졌다. 교보생명은 3세 미만 유아가 있는 직원에게는 출퇴근이 자유로운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직원들이 육아휴직 등 가족친화경영 프로그램을 적극 이용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 덕분에 2006년부터 2008년 4월까지 남자 1명을 포함한 94명이 육아휴직을 이용했다. 이는 법정 출산휴가자 중 24.9%로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높은 이용률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들의 가족친화경영에 대한 인식은 밑바닥 수준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2009년도 가족친화지수 측정 및 분석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1천202개 조사 대상기관들의 가족친화지수 평균점수가 100점 만점에 평균 49.2점에 그친 것. 특히 이 가운데 민간기업(상장법인) 549개의 가족친화지수는 평균에도 못 미치는 45.2점을 나타냈다. 실제 국내 전체 보육시설 3만6천여 개 중 직장 보육시설은 1%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은 국'공립 보육시설 역시 전체 6%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현실이다. 가족친화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기업에 다니는 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축복'받은 이들일 뿐, 여전히 일과 가정이라는 두 가지 짐을 어깨에 얹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워킹맘이 더 많다. 맞벌이 부부 황모(34'여) 씨는 "아침에 8시 30분까지 출근하기 위해서는 딸 둘을 어린이집까지 데려다 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저녁이면 혹시나 일이 늦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육아휴직 제도가 엄연히 있지만 회사에서는 '육'자도 꺼내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는 것. 황 씨는 "가족친화경영도 좋지만 현재 법적으로 규정돼 있는 제도만이라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부터 만들어주면 좋겠다"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육아휴직 의무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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