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손잡이 없는 양날의 칼이다. 무겁고 날카로운 양날의 칼이다."
경북 고령 출신의 김병준(58) 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참여정부 말기에 매일신문 주최 대구'경북인 신년하례회에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충고'를 했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기자가 서울정치부에 근무하던 2008년 1월). 김 전 위원장은 5년간 권력 핵심에 있으면서 권력에 대해 느낀 생각을 마음에 담아, '무겁고 날카로운 물건 잘 쓰세요.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라고 진심으로 충고했다. 그는 이후 "권력은 쥐는 순간 손을 베이고, 힘주어 드는 순간 손목과 팔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며 "더 힘주어 휘두르는 사이 어느새 그 칼은 내 몸속에 들어와 있다. 그 칼을 내려놓고 나니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경북 성주 출신으로 '6공화국 황태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박철언(70)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은 기자와 만나 권력에 대해, "강하고 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참으로 약하고 짧은 것이 권력"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권력자들은 결국 역사와 국민의 준엄한 심판대에 서게 된다. 현 정부와 여당 핵심부도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려움을 갖고 봉사해야 했는데…. 인사나 정책 두 가지 측면에서 온 힘을 쏟아야 이 위기를 헤쳐나갈 텐데 현재 권력을 잡은 사람들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밝혔다.
과거 정권의 핵심부에 있던 지역 출신 두 정치인의 권력에 대한 속 깊은 단상들이 현 시점에서 더 가슴 깊이 파고든다. 정권 초기에 서슬 퍼런 권력이 말기에는 무상함으로 다가오게 되는 역사의 준엄한 수레바퀴는 계속 돌고 있다.
◆권불오년(權不五年), 배지사년(Badge4년)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권력에 관한 유명한 한자성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에는 '권불오년, 배지사년'이라는 개조된 한자어가 적절할 것 같다. 정권은 5년마다 바뀌고, 살아있는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다. 이 두 권력이 모두 바뀌는 해가 바로 흑룡의 해 2012년이다. 집권을 지상 목표이며 존재 이유로 여기고 있는 기존 정당들은 권력 쟁취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특히 양대 선거를 치르는 올해는 더 혼탁하고, 시끄럽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 '현 정권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했으나, 이 말은 2011년 망언(妄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임기 말 각종 측근 비리가 터지면서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은 최악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이에 더해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 역시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박배수 보좌관이 돈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구속되자, 올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에서 사실상 은퇴선언을 했다. 이 의원은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좋지 않은 수식어를 달고 다녔는데 말이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형 이건평 씨의 반면교사(反面敎師) 사례가 국민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는데 또 유사한 일이 되풀이된 것이다. 영남대 박홍규 교수는 '이명박 정권과 법치주의'라는 글을 통해 "원칙과 기준이 없는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변태적 '법치주의'"라고 일갈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참여민주주의가 됐지만 이명박 정부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성균관대 고(故) 김일영 교수도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김대중'노무현 정부)과 비교해 변한 것은 없다. 다만 촛불집회처럼 대규모 집회를 포옹하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를 포용하지 못했다"고 평가절하했다.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생각하는 권력이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와 권력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윤순갑(경북대)'김태일(영남대) 교수는 권력은 한 권력자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는 속성 자체를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속성 때문에 '양날의 칼'이라는 비유가 적절한지 모른다.
윤순갑 교수는 권력에 대해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중 권력은 욕망 중에서도 무서울 정도로 강한 것"이라며 "죽음에 이르러서야 소멸되는 것이 바로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권력은 자기확장 욕구를 내포하고 있어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공격의 욕구가 발동하게 돼, 권력이 없어지면 처참하게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일 교수는 대한민국의 권력구조에 대한 변화를 강하게 요구했다.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는 5년 단임 대통령 중심제의 폐단이 너무나 크다는 것. 이런 대통령 중심제 아래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인척 및 측근 비리가 매번 터져나올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제도적으로 친인척 관리기구를 독립시키고, 감사원 역시 입법부에 소속시켜 대통령의 권력을 독립적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 권력의 나쁜 속성(아무렇게나 휘둘러 타인을 부당하게 괴롭히는 행위)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어 그는 5년 단임 대통령 중심제를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그는 "4년 중임제로 바꿀 경우 대통령이 4년 동안 집권을 해도 다시 4년 더 연임을 하기 위해 스스로 권력남용을 자제하고, 국민들의 신임을 한 번 더 받기 위해 조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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