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의 해, 새로운 해양강자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원유 봉쇄에 대항해서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으며, 중국은 남중국해에 접근하려는 미국에 대응해서 항공모함을 진수했다. 문제의 본질은 간단하다. 식민지시대 이래 해양세력에 눌려있던 대륙세력들의 힘이 해양으로 표출되는 양상이다. 해양세력의 최강자 미국은 이라크 철군과 당면한 대통령 선거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아졌고, 해양세력의 또 다른 한 축인 유럽은 경제위기로 좌초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륙의 중심에 자리하면서도 늘 주변(rim land)으로 홀대 받았던 중국이었다. 지난 세기 영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까지 가세한 해양세력들이 낸 생채기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복수의 준비를 마쳤고 이제 절호의 기회까지 맞았다.
중국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군사안보 영역, 특히 해군력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비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중국은 이미 600여 년 전 완성된 해상제국이었다. 당시 중국의 선박 건조기술과 항해기술은 식민지 개척 시기의 서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했고, 원정에 참가한 선단의 규모나 조직 면에서 완벽한 대양해군의 조건을 갖추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중국이 바다의 '규칙 제정자'였다는 사실이다.
무법과 포악함도 서양 해상제국에 비해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명의 영락제가 정화(鄭和)로 하여금 7차례에 걸쳐 남해원정(1,405~1,433년)을 감행했을 당시를 돌이켜보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국가 간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세계를 하나의 권으로 만들고, 무역 관계들을 체결하여 세계를 보다 역동적으로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하는 약자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모든 행위가 해적질이나 다름이 없었다.
영락제가 조공무역을 통해 공품(貢品)으로 약취해간 것은 가축이나 물산만이 아니었다. 방사(方士)가 황제의 건강에 필요하다고 조언한 성파트너를 조달하려고 각국에서 수 백 명의 처녀들을 공물로 앗아갔다. 기록에 따르면, 영락 6년(1,408년) 태감 황엄(黃儼)을 조선에 파견하여 300명의 동정소녀를 징발하여 갔고, 일본을 비롯한 남해 원정의 대상이 된 인접국들 역시 같은 피해를 입었다.
그 이면에는 힘을 앞세운 중국 특유의 아전인수와 억지가 있다. 마치 중국의 불법조업 어선단이 우리 서해와 남중국해역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것과 같은 논리다. 우리는 지금, 해상제국 중국의 등장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논란이 자꾸만 안타깝게 오버랩된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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