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성익의 가슴 뛰는 세상] 오로빌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

인도 남부 첸나이 근처에는 40개국 이상 약 2천여 명이 모여 사는 '오로빌'이라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설립자 마더는 서로 다른 종교와 인종'성별'문화 그 모든 것을 넘어 인류의 조화와 화합을 추구하기 위해 사막 땅을 개척하여 지금은 거대한 숲 속에 작은 커뮤니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로빌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로빌에서 보낸 시간이 소중했던 이유는 하루에도 수없이 다양한 국적,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일 접하는 만남은 늘 설렘을 주는 동시에 성장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친구들 사이에서 이 친구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덴마크에서 날아온 히피 '라우에'. 한 한국분의 초대로 게스트 하우스에 놀러 가게 되었는데 한 남자가 테라스에서 기타를 신나게 치고 있더군요.

라면 파티를 연 날이었습니다. 다들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하려고 식기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라우에가 입구를 막고 이번엔 자기가 하겠다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형 한 분과 제가 설거지를 하게 되었는데 약 1분이 지났을까요? 뒤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이 친구가 그 사이에 자기 방에서 기타를 가져와 멋지게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설거지를 끝낼 때까지 말입니다.

세상 누가 이런 독특한 경험을 해보았을까 싶더군요. 한참을 웃었습니다. 설거지가 거의 마무리될 때 형을 보며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형! 우리 더 깨끗하게 설거지를 한 번 더 할까요?" 마치고 돌아서며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하니 그 친구도 이렇게 누군가가 설거지를 할 때 연주하긴 처음이라며 머쓱해했습니다.

라우에 베크(Laue bech)는 당시 우리 나이로 20세였습니다.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뭄바이 등 인도 여기저기를 여행하다 오로빌에 들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덴마크의 시골 숲 속 마을에서 자란 그였습니다. 부모님은 개방적 교육 마인드를 갖고 있어 남매들 모두 대안학교를 나오고 지금도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 가정 분위기에서 자란 친구라 그런지 언제나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호기심이 왕성했습니다. 마냥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개인적인 삶의 개똥철학(?)은 또 어찌나 멋지던지. 직업이 뭐냐고 물었더니 '예술가이자 여행가'라고 답했습니다.

라우에는 어딜 가든지 인기가 많았습니다. 타고난 음악적 소질과 절대음감으로 다룰 수 있는 악기만 10개가 넘었고, 붙임성도 좋다 보니 아무리 낯선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순식간에 한 그룹의 친구를 사귀던 청년이었습니다. 하루 일정이 종료되고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 우르르 모여 언제나 이 친구의 연주 음악을 들으며 인도 시골 하늘의 별을 감상하거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곤 했습니다. 모두 잠을 자려고 내려가던 길. "너 정말 연주를 잘한다면서 대체 얼마나 연습을 한 거야?"라고 묻자 그 친구는 빙그레 웃으면서 "나는 연습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언제나 즐겼을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나중에 자타가 공인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라고 불릴 만큼 독특한 발상과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했던 라우에. 대화를 하면서도 미래형 시제를 싫어하고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라는 표현을 쓰며 말하던 그 친구. 그렇게 저뿐만 아니라 그 친구를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던 그런 친구였습니다.

라우에는 커다란 기타 그리고 기타보다 작은 배낭을 메고 홀연히 오로빌을 떠났습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 친구. 자기 삶의 주인공은 자신임을 알게 해 준 그 친구. 철학서, 명상 서적이 아니라 삶 속에 가치들을 풀어내는 것을 직접 보여준 그는 저에게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보니 그는 지금도 여전히 유럽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함께 꿈을 꾸는 친구가 지구 어딘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비록 저는 지금 한국에, 그 친구는 유럽에 머물고 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한 명의 소중한 친구를 통해 제 삶의 터전이 한국에서 저 멀리 유럽까지 넓혀진 기분입니다.

박성익/네트워크기획 '아울러' 링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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