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신년 인사

어느 직장이나 새해가 되면 장(長)이 되는 분은 신년사를 하고 직원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신년교례(新年交禮)라는 행사를 가질 것이다.

회진을 마치고 그 행사에 참석하려고 승강기를 탔다가 동료 교수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하고 "올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했다. 승강기에서 내려 밖에 나서자 날씨가 추웠다. 동료 교수가 말했다. 심장 혈관에 그물망(스텐트)을 끼운 자기는 추위가 싫다고. 그래서 덧붙여주었다. 올 한 해 따뜻한 가슴을 가지시라고.

회진하려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니 전공의가 환자에 대한 보고를 한다. 문득 올해는 차가운 머리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가 나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병원에서도, 가정에서도 머리를 차갑게 식혀 화를 내지 말자고. 결국 화나는 일은, 가만히 실타래 같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병원식당의 교례회에서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영양사분들이 눈에 띄어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성탄절에 토끼 귀를 닮은 모자를 쓰고 있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사복 입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니 더욱 아름답다고.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흥 없던 그녀들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변했다.

오전 수술을 마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전공의 두 명이 식사를 하려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결혼을 했느냐고 물었다. 한 전공의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한 명은 머리를 흔들었다. 결혼한 전공의에게는 "오늘 당신이 왜 이리 예쁘지?"라고 부인에게, 총각인 전공의에게는 "오늘 저녁밥은 왜 이리 맛있지요?"라고 어머니에게 퇴근하면 신년인사를 하라고 권했다. 그녀들은 아마 남편으로부터, 자식으로부터 어떤 새해 인사를 받은 것보다 기뻐했을 것이다.

교회 목사님이 한 말씀이다.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마이크를 들이대고 '오늘 목사님이 어떤 설교를 했느냐'고 묻자 90% 이상이 모르더라고 했다.

그렇다. 신년이 되면 각 기관의 책임자는 신년사를, 직원들은 서로 인사와 덕담을 한다. 그때 매번 듣던 평범한 이야기는 잘 기억되지 않는다.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당신 참 아름답소' '왜 이리 음식이 맛있어요?'라는 신년사 혹은 덕담을 하면 어떨까. 서로 치켜세우고 감사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한 해를 보내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러면 가정이 화목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직장이 즐겁고, 직장이 즐거우면 기관은 부쩍부쩍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

임 만 빈(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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