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 날이면 할아버지 손길이 마냥 그립습니다."
10여 년째 무료급식 봉사를 했던 칠순의 할아버지가 귀가 중에 숨진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두류공원에서 1천여 명이 참석하는 무료급식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급식 일을 돕던 박순곤(78'대구 달서구 두류동) 할아버지가 최근 3주일째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감기몸살로 잠시 쉬는 줄 알았는데 김이수 할머니에게 근황을 물었더니 지난달 7일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다시는 못 볼 곳으로 가버렸다는 것. 김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사고를 당하던 그날도 봉사활동에 다녀오겠다면서 급하게 나간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며 봉사원들이 할아버지를 기다릴까 봐 소식을 전하러 온 내내 눈물을 훔쳤다.
박 할아버지는 일흔이 넘도록 감기 한 번 앓지 않을 만큼 건강했다. 매주 수요일 8시가 넘으면 말쑥한 차림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김 할머니는 오랜 세월동안 박 할아버지가 어디로 바쁘게 나가는지 몰랐다. 몇 년 전에서야 적십자사 대구지사로부터 '봉사원조기'를 받아 와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달성군 옥포가 고향인 박 할아버지는 유년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해 변변한 직장에 다니지 못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빼고는 45년 결혼 생활 동안 한결같이 자상한 남편이었다고 김 할머니는 전했다.
또 어려운 이웃 일에는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해주는 마음 좋은 할아버지로 통했다.
봉사원들이 급식봉사를 마치고 남은 밥과 국을 조금 싸드리려 해도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주라며 손사래를 쳤다. 봉사원들은 급식 날이면 봉사원 조끼를 단정하게 입고 나와 박 할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줄만 알았다.
박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되던 날 사양하는 할머니를 달래 집을 방문했다. 김 할머니가 식당과 공장을 전전해 모은 돈으로 산 48㎡ 크기의 낡은 한옥이 전 재산이다. 허리수술을 3차례 받은 김 할머니는 장애5급이다.
이갑순 남구 봉사회 회장은"봉사원과 급식차량보다 미리 와서 급식장소를 말끔히 치워놓고 기다렸던 할아버지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할아버지가 좋은 곳에 갔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할아버지가 금방이라도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며 들어올 것 같아 대문을 열어놓고 지낸다.
글'사진 오금희 시민기자 ohkh7510@naver.com
멘토:배성훈기자 bae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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