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 두둥 따라라…락."
북채를 쥔 손놀림이 빨라지자 북소리는 더욱 격해졌다. 10대의 모듬북이 내는 소리로 좁은 연습실이 들썩였다. 일사불란하게 북을 한바탕 신나게 두드리고 난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13일 오후 경북 영주시 '영주 청소년문화의 집'. '세로토닌 드럼 클럽' 아이들 10여 명이 모듬북 연습에 한창이었다. 영주 영광중학교 1~3학년들인 이들은 방학 중에도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모여 북을 두드린다. 3학년 김태현 군은 "학기중에는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고 나면 몸이 지쳐 곧바로 귀가한다. 기분도 좋고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며 수줍게 웃었다.
'세로토닌 드럼 클럽'. 한 해 크고 작은 공연 횟수가 100여 회에 달하고, 대기업의 거액 후원에 해외 공연까지 다녀온 이 청소년 동아리는 영주에서는 '작은 기적'으로 통한다. 회원 중 상당수가 한때 학교폭력과 비행을 저지른 전력을 가진 못 말리는 문제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생생활지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황재일(53'미술) 교사가 영광중학교 생활부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인근 6개 중학교에서 좀 논다(?)는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맨날 모이는 곳이 노래방, 오락실, PC방이었어요. 그렇게 모인 아이들이 담배를 배우고, 오토바이를 훔치고, 약한 아이들을 상대로 '삥'을 뜯고 다녔지요. 일단 우리학교 아이들부터라도 그 수렁에서 건지고 싶었어요."
황 교사는 우연히 한 예술단체의 북 공연을 관람한 후 가슴을 울리는 소리에 '바로 이거다' 싶었다. 문제아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데 딱이다 싶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북 장단은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에게 그만이었다. 동문 출신 사업가로부터 500만원을 지원받아 대형 북 10개를 샀고, 현재 클럽의 전신인 '친한 친구 놀이패'를 결성했다. 평소 요주의 대상으로 꼽히던 학생 15명을 놀이패에 넣었다. 한 학생은 "강제전학 갈래? 북 칠래?"라고 하는 황 교사의 반 강요에 못 이겨 북채를 손에 들었다.
북 연습은 학기 중에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북을 사고 남은 후원금으로 아이들에게 자장면을 사 먹이며 연습을 시켰다. 호랑이처럼 버티고 선 선생님 앞에서 아이들은 꼬박 5, 6시간씩 모듬북을 배우고 연습했다. 귀가 시간이 늦고 몸이 힘드니 또래와 어울려 다닐 여유가 없었다. 여름방학 때는 인근 청소년수련원에서 10일간 캠프를 하면서 새벽부터 북 연습을 했다. 노인복지시설을 찾아가 식사나 청소일도 도왔다. 이렇게 6개월이 지나자 아이들이 달라졌다. 눈매가 선해지고 비행(非行)도 멀리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선생님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북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교내 첫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자 이곳저곳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이듬해인 2008년에는 한 독지가가 북 구입 비용으로 400만원을 쾌척했고, 경북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말레이시아에 초청 공연까지 다녀왔다. 지난해에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초청돼 기립박수를 받았다.
영광중의 학교 부적응 학생 선도사례는 전국으로 보급되고 있다. 지난해 삼성생명이 7억원을 모듬북 구입비로 후원, 영광중 사례를 본뜬 문제아 대상 청소년 북 동아리를 전국 100개 학교에 전파했다. 황 교사는 "삼성생명 측에서 내년부터 해외로 이 프로그램을 보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방 소도시의 청소년 선도 프로그램이 마치 행복을 전달하는 신경물질이라는 '세로토닌'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인근 전문계고에 입학한다는 한 학생의 말. "사고뭉치로 찍혀서 강제전학을 두세 번이나 한 친구가 있었어요. 결국엔 다른 학교에 가서도 나쁜 짓을 반복하더군요. 강제전학이 반복되면 '문제아 딱지'가 붙어 자포자기하게 돼요. 저를 강제전학시키지 않고 끝까지 격려해주신 황 선생님, 모듬북 동아리가 너무 고맙습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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