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뒤태를 성형합니다

어느 방송국의 대담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노을처럼 벚나무 잎이 곱게 물들어가는 가을 풍경 속으로 대담자와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연출하였습니다.

며칠 후 TV 속에서 그때 찍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낙엽이 짙게 깔린 공원 길을 따라 걸어가는 나의 모습이 나무들과 함께 클로즈업되더니만 이내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화면 속 나의 뒷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나는 내 걸음걸이에 아연실색했습니다. 양 무릎 사이가 지나치게 벌어져 있고 원을 그리듯 팔자로 내딛는 걸음모양이 가관이더군요. 게다가 양 어깻죽지조차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으니…. 뒤태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청년 시절에 고급 군 지휘관의 비서직을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구 일본군관학교를 나온 50대 초반의 그 사령관은 걷는 모습이 유난스러웠습니다. 보폭의 크기와 속도, 힘, 모양 그리고 팔을 내젓는 동작에 이르기까지 큰 새의 날갯짓처럼 느릿느릿했습니다. 장군 진급철이던 어느 봄날, 그분의 걸음걸이가 종래와 달리 매우 경쾌하고 빨랐습니다. 장군의 권위가 든 걸음자세가 아니라 내딛는 발자국과 앞뒤로 흔드는 팔 선에서 마치 희희낙락 웃음이 팔락거리는 듯했습니다. 그날 그분은 별을 하나 더하는 영예를 얻고 귀대하는 길이었던 것이니 하늘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 그대로 발걸음에 전해졌을 것입니다.

걸음걸이에서 그 사람의 마음까지 본다면 과언일까요. 바른 자세와 걸음의 기준은 다만 정형외과적인 요구만이 아닐 것입니다. 상서(尙書)에 보면 손과 발놀림은 물론이요, 목소리와 얼굴빛 그리고 앉고 서는 자세에 이르는 아홉 가지 기준(九容道)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발은 묵직하게 옮겨 놓고 손은 공손하게 둔다. 목은 반듯하게 세우고 눈은 대상을 단정하게 바라보며 얼굴빛은 환해야 한다. 입은 꼭 다물어야 하고 목소리는 그 톤이 조용하며 높낮이가 골라야 한다. 기품 있게 일어서고 앉을 때는 바르고 듬직해야 한다.'

한땀 한땀 수 놓듯 내딛는 일자 걸음은 마치 무용수의 율동 같고 허리와 목을 곧추세우고 앞으로 내뻗듯 힘차게 나아가고자 하는 우아한 발걸음은 보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사관생도는 물론이고 군에 입대하는 장정들은 제식훈련에 적잖이 고통을 겪습니다. 앉고 서고 걷는, 지극히 익숙한 몸동작들이지만 군인이 되기 위해 표준화된 기본자세를 익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도 보행자세가 중심이지요. 제식훈련이란 바른 외적 모양 만들기와 더불어 군사명령을 수명하고 실천하는 정신훈련이기에 제식동작이 바로 설 때 비로소 군인이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 딴에는 앉는 자세와 걸음걸이에 늘 신경을 쓰고 삽니다. 의자에 앉을 때나 소파에서 쉴 때도 허리를 바로 세웁니다. 목과 허리선을 똑바로 하여 걷고 시선은 정면보다 조금 위로 둡니다. 팔을 앞뒤로 가볍게 교환하듯이 흔들면서 반듯하게 걸으려고 애씁니다. 소위 일자 걸음을 유지하겠다는 의도이지요.

때로 패션모델의 워킹을 눈여겨보기도 합니다. 다소 과도한 보선(步線)일지 모르나 탄성이 있고 바르게 내딛는 걸음이라 높은 점수를 줍니다. 그들의 뒷모습은 살아서 움직이는 선형으로 보입니다. 마치 하늘과 땅을 열고 나아가는 선도자처럼.

균형 잡힌 걸음은 보기도 좋거니와 건강미가 흘러넘치고 당당하여 더욱 아름답습니다. 아울러 뒷모습도 따라 곱고 예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뒤태가 고운 사람에게는 한 번 더 눈길이 갑니다. 여운이 남기 때문이지요. 그 걷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생각해보면 걸음걸이는 유아기에 단 한 번 배우는 것입니다. 그때는 오로지 서고 발자국을 떼기만 하여도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엉거주춤한 그 뒷모양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리고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아주 완벽하다고 믿은 나머지 자신의 보행자세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너무 오래 써먹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뒤태를 볼 수가 없으니, 원…. 어디 뒤태를 성형하는 데는 없을까요. 아니면 워킹스쿨이라도 수료해야 할까 봅니다.

김정식/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

※ 이번 주부터 본란에 김정식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의 글을 4주에 한 번씩 싣습니다. 필자는 육군 3사관학교 행정학(예술행정) 교수를 지냈으며 저서로 '일류에는 로비가 있다' '나를 디자인합니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