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스페인을 비롯해 포르투갈과 모로코를 다녀왔다. '정열'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될 만큼 문화적 열정이 대단한 스페인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생소한 포르투갈과 모로코에 대한 궁금증도 안고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이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충전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임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번 여행 역시 필자의 일과 연관된 에너지의 충전이었지만 첫 도착지인 포르투갈에서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여행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 다름 아닌 스토리텔링으로 그들만의 또 다른 문화유산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그 것이다. 물론 허구는 아니지만 단순한 역사적 의미를 이용해 현대적 문화유산을 만들고 있는 그들에게서 또 다른 에너지원을 제공받기에 충분하였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사전적 의미는 '이야기하기'이다. 이 의미를 떠올리게 한 곳이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대항해시대' 때 리스본 항구를 떠나는 모험가들을 전송하고, 오랜 항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모험가들을 왕이 직접 맞이했다는 '벨렘탑'이 태주강 옆에 서 있다.
1519년에 완공된 이 탑은 3층 구조의 건물로 1층은 19세기 초까지 정치범의 감옥으로, 2층은 항해하는 배들을 보호하기 위한 포대(砲隊)로 사용되었으며 테라스가 멋진 3층은 왕족의 거실로 지금은 16~17세기에 사용되었던 가구들이 전시돼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유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불과 100여 m 떨어진 곳에 '발견기념비'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 스토리텔링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이 기념비는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나가는 항해로를 개척하고 무역 확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아비스 왕가의 왕자이자 대항해시대를 주도한 엔리케 왕자의 사후 500년을 기념해 1960년, 불과 50여 년 전에 세워졌단다. 셋째아들로 태어나 왕도 되지 못했지만 대항해시대의 모험가들을 지원했다는 것만으로 '벨렘탑'과 연관된 또 다른 문화유산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굉장히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각된 53m 크기의 대형 기념비이고 또 그 광장 바닥에는 모험가들에 의해 개척된 항로가 표시된 세계지도가 있어 볼거리를 더해주긴 하지만 불과 5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괜한 질투심만 안겨 준다.
우리도 후대에 빛을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을 만들자. 팔공산에 그럴듯한 산신령 하나 만들어낼까.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한 왕건이 무사히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산신령이 있었다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신령이 나타나는 연못을 만들고 모월 모시에 산신령이 나타나도록 연출한다면 100년 후 우리의 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 스토리텔링의 사전적 의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거짓말하기'이다. 선의의 뜻으로 받아들이자.
여상법<대구문화예술회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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