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와 접속하라(Connect), 경계를 횡단하라(Traverse), 차이를 생산하라(Becoming).'(고미숙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표지 글)
몇 주 동안 꿈에 대해 말했다. 국어 선생님이란 것이 내 꿈이었고, 국어 선생님이 되었으니 난 이미 표면적으로는 꿈을 성취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나는 언제나 답답했다. 한동안은 그 답답함의 근원을 알지 못했다. 아이들보다는 내가 중심이었고, 그런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이 내 속에서 자라났다. 내가 걸어가는 만큼 아이들도 함께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언제나 어긋났다. 나보다 앞서 걸어가는 아이들은 따라 가기가 힘들었고 뒤처진 아이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그 서운함을 아이들에 대한 내 기대와 사랑의 크기가 크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보잘 것 없는 삶이었다. 달려가면 잡힐듯한 꿈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꿈들은 언제나 나보다는 한 발짝 앞에서 달아났다. 내가 기어가면 걸어가고, 걸어가면 달려가고, 힘겹게 달려가면 날아가 버렸다. 2005년, 내 삶의 길을 바꾼 책을 만났다. 이제는 제법 많이 알려진 '수유+너머'라는 기묘한 이름의 연구 공간, 그리고 고미숙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는 책. 접속, 횡단, 그리고 생산. 나를 묶고 있는 그 고착된 끈을 풀고 다른 삶, 다른 사유, 다른 가치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면 많은 것을 얻는다는 진리가 거기에 있었다.
그날 이후, 난 수없이 '접속하고, 횡단하고, 생산하기'를 반복했다. 강원도 어느 산골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이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소식을 듣거나 전라도 어느 바닷가 초등학교에 멋진 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면 반드시 거기로 달려갔다. 심지어 서울 대치동 어느 유명한 학원에서 완벽한 논술 강의를 한다는 정보를 얻으면 가서 강의를 들었다.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처럼 절망하거나 답답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것은 행복이었다.
물론 접속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많았다. 생각이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와 다른 생각은 내 생각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고, 잘못 걷는 발걸음을 바람직한 길로 인도하기도 했다. 세계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만들어가는 다양한 길의 집합이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횡단이었다. 횡단은 접속보다도 더욱 강렬했다. 내 존재의 의미만 중시하다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는 단계로 전이되었고, 아이들을 아이들 그대로 이해하는 선물도 나에게 안겨 주었다. 아이들은 우월의 기준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일 뿐이었다. 그것은 엄청난 깨달음이었다. 그러한 접속과 횡단을 거쳐 만들어진 사고는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토대가 되었다.
세상은 온통 상처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어차피 우린 지금, 여기에 있는데 벌써 절망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는 항상 진행 중에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을 확정하려는 열망은, 우리가 지금 '과정' 중에 있으며, 앞으로도 '과정 중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태도,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정을 빨리 끝내고 싶은' 피로감의 산물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여전히 내 사고와 지식은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그 보잘 것 없음을 '접속'하고, '횡단'하고, '생산'하는 것으로 채워갈 게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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