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밤 달리던 고속버스 기사가 쓰러졌다!

시속 100Km 달리다 갑자기 기절, 옆자리 승객이 재빨리 핸들 잡아

15일 0시 30분쯤 강원 원주시 신림면 금창리 치악휴게소를 3㎞가량 앞둔 중앙고속도로상 안동행 고속버스 안.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달리던 버스 안에서 운전기사 김모(53) 씨를 제외한 승객 7명은 졸거나 자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운전석 오른쪽 첫 자리에 앉아 있던 천모(21) 씨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운전기사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옆으로 축 늘어져버린 것. 긴박한 상황에서 천 씨는 재빨리 운전대를 잡았다. 그 사이 천 씨 옆 창쪽에 앉아있던 승객 박모(42) 씨도 위기를 감지하고 운전기사를 운전석에서 빼냈다. 운전 경력이 많은 박 씨는 운전기사를 옆으로 빼낸 뒤 곧바로 천 씨로부터 운전대를 넘겨받았다.

아찔한 순간을 지켜본 다른 승객들은 고속버스가 3, 4분을 달려 치악휴게소에 안전하게 도착한 뒤에야 악몽 같은 시간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액션 영화 '스피드'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이달 14일 오후 11시 동서울종합터미널을 출발해 15일 오전 1시 30분 안동에 도착할 예정이던 D사 소속 고속버스에서 이 같은 아찔한 일이 일어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날 승객들은 치악휴게소에서 1시간여 동안 추위에 떨고 있다가, 연락을 받고 달려온 버스업체의 예비차로 옮겨타고 목적지인 안동으로 갈 수 있었다.

박 씨는 "기사를 운전석에서 빼낸 뒤 운전대를 잡긴 했지만 팔과 다리, 가슴 등이 떨려 어떻게 버스를 몰고 왔는지 모르겠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 고속버스 회사는 운전기사 김 씨가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한 뒤 의식을 되찾았다는 이유로 당초 운전한 버스로 목적지인 안동까지 운행하도록 허용, 회사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또한 사고 위기를 넘긴 뒤 항의차 찾아간 승객들에게 감사는커녕 보상금을 노린 브로커 취급을 한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사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당초 "여기 왜 왔느냐, 승객들이 이날 일을 사고라고 하는데, 차량이 전복 또는 충돌로 인해 파손되거나 인명피해가 발생해야 사고"라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 이 회사는 한참 뒤에야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승객들의 기지로 위기를 잘 대처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운전기사인 김 씨는 "일시적인 현기증 증세로 의식을 잃었을 뿐 현재 이상이 없다"고 했으며, 회사 측은 뒤늦게 김 씨에게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뒤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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