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어디에 걸까요? 이 벽이 너무 밋밋하니까 붉은 작품으로 포인트를 한 번 찍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도 여기 걸면 붉은색이 너무 강할 것 같아요. 통일감이 흐트러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다수결로 해보는 게 좋겠어요. 이 작품을 어디에 걸지 다수결로 결정합시다."
16일 오후, 갤러리 전에는 전시 'EXTENTION'을 준비하는 예비 큐레이터들이 한창 분주하게 디스플레이 중이었다. 한 명이 아닌, 11명이 공동으로 큐레이터를 맡다 보니 작품 위치 하나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경북대평생교육원 큐레이터 과정을 마치고 전시를 직접 기획했다. 준비한 전시의 주제는 'EXTENTION'. 회화의 기본이 되는 선이 평면을 뛰어넘어 그 개념을 확장시키고, 선이 만들어내는 특질에 따라 인간의 내면을 사유하며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이건용, 김지현, 강윤정의 작품을 보여준다.
이건용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와 그 행위의 반복으로 나타나는 선을 통해 '소통과 사유'로서의 선긋기를 완성한다. 김지현은 한지를 오려 노끈을 만들고 이를 붙이기까지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을 보여준다. 강윤정은 종이를 겹쳐 채색하고 배열하는 과정을 반복해 종이의 틈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입체적 선의 패턴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이례적으로 상업 화랑인 갤러리 전이 무료 대관해준다. 전병화 갤러리 전 대표는 "이분들의 열정을 돕고 싶었는데, 전시가 신선하고 좋다"고 말했다.
예비 큐레이터들은 관람객 시선이 머무는 것에서부터 전시 동선까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큐레이터 지망생들은 농부, 전업주부, 선생님까지 다양하다. 대전, 구미, 영천 등에서 공부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이들이다.
영천으로 귀농한 김경희(39) 씨는 15년 전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를 준비하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어요.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오가기 때문에 커리큘럼 이외에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죠."
문미화(46) 씨는 대전에서 대구까지 수업을 듣기 위해 오갔다. 서울로 전시를 보러 다닐 만큼 미술에 관심이 많던 문 씨는 기차역에서 학교까지 가까운 대구에서 수업을 듣기로 한 것.
미술에 대한 꿈을 펼치는 이도 있다. 양진숙(48) 씨는 오래전 미술대학을 졸업해 미술에 대한 이루지 못한 꿈을 가슴 한쪽에 담아두었다. "미술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 싶어 수업을 들었어요. 미술의 맥을 알고 보면 더 미술과 소통을 할 수 있네요. 참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막 대학을 졸업한 김아람(26) 씨에겐 좋은 실습의 시간이었다. 조소과를 졸업한 김 씨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여러 실전 경험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기 위해 구미에서 달려온 선생님도 있다. 논술교사 여소녀(49) 씨는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며 미술을 소개해주고 싶어 배웠는데, 그림 자체가 아니라 역사, 철학이 다 녹아 있어 좋았다"면서 "미술 감상법 등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풍부한 미술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큐레이터 지망생 김혜원(30) 씨는 "컬렉터인 아버지의 권유로 갤러리를 해보고자 이 과정을 이수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경북대 대학원과 경북대평생교육원 큐레이터과정 학생들은 릴레이 전시 '비전 앤드 리플렉션'(VISION & REFLECTION) 2012전을 진행하고 있다. '구멍-예술과 통하다'는 관념의 틈새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물리적 구멍이 작품에 주제를 나타나는 구상미술, 설치, 그리고 영상작품 위주로 전시된다. 2월 7일까지 경북대미술관에서 열린다. 2월 9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결을 수놓다'전은 세상의 다양한 결들을 표현해내는 작품들을 한데 모아 그 속에 숨쉬고 있는 숨결을 읽어내는 전시로 역시 경북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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