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민삶 "헉헉"… 노소없는 고물 수집

대학생·주부 재활용품·파지들고 고물상 찾아

19일 이른 새벽 대구 동성로에 나온 한 아주머니가 파지를 주워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19일 이른 새벽 대구 동성로에 나온 한 아주머니가 파지를 주워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경기 불황이 극심해지면서 대학생 등 젊은층에서부터 40, 50대 주부까지 파지'고물 수집에 나서고 있다. 고물값마저 오르자 트럭을 몰고 전문적으로 고물을 수집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18일 오후 북구 대현동의 한 고물상. 신문과 페트병을 봉지에 잔뜩 넣어 온 20대 젊은이 2명이 찾아왔다. 8년째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는 변종혁(32) 씨는 "학기가 끝나면 책이나 옷 등을 고물상에 들고 오는 대학생들도 많고 생활 형편이 괜찮아 보이는 젊은 사람들도 직접 고물을 모아 가져온다"며 "갈수록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일반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물건은 죄다 고물상에 파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북구 산격3동의 한 골목길. 낡은 빨간색 점퍼를 입은 김모(74) 할머니가 상자와 빈병이 담긴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있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그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할머니는 40대 후반의 아들이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뒤 돈벌이를 못하고 있어 고등학생 손자 두 명을 돌봐야 한다.

그는 점점 치열해지는 파지 전쟁이 야속하기만 하다. "요즘엔 젊은 애들도 고물상에 찾아온다니까. 돈 좀 있는 사람들이 더 해. 집이 두 채나 있는 주부가 새벽부터 나와 밤늦게까지 파지를 줍고 있어. 나는 요즘 몸이 안 좋아서 하루벌이가 4천~5천원도 안 되는데…."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삼켰다.

박진규(62) 씨는 김 씨 할머니와 사정이 조금 다르다. 북구 대현동 전봇대 주변에서 박스를 줍고 있던 박 씨는 번듯한 회사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애들이 다 결혼해서 잘살고 있고 나도 아들, 며느리와 함께 지내 생계 걱정은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요즘 너무 경기가 어려워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용돈을 별 겸 틈틈이 박스를 주워 고물상에 판다"고 했다.

고물 수집 경쟁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 고물상 관계자들은 최근 고철값이 오른데다 오랜 경기 침체탓이라고 했다. 지역 한 고물상에 따르면 요즘 구리값은 1㎏에 8천400원, 고철은 380원으로, 구리값은 5년 전보다 2배가량 올랐다.

고물상 직원 오재대(30) 씨는 "파지가 1㎏에 150원인 것에 비하면 구리와 고철은 돈벌이가 되고 과거보다 가격도 많이 올랐다.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고철만 전문적으로 줍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장사가 잘되는 고물상은 하루에 손님이 100명 이상 찾는다"고 귀띔했다.

고물'파지 수집상과 빈곤층 지원단체들은 근로 능력이 없는 고령자들의 생계 수단이었던 파지 수집에 최근 젊은층까지 뛰어드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자원봉사능력개발원 지민겸 기획실장은 "고물 수집은 생활이 어려운 고령자들의 생계 수단이었는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젊은층까지 파지를 줍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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