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 선물을 배달하는 집배원과 택배회사 직원들은 몰려드는 택배 때문에 '일 폭탄'을 맞고 있다. 식사할 시간도, 풀어진 신발끈을 조여맬 여유도 없다. 하지만 배달원들은 '정'도 함께 전달한다는 마음으로 힘겨움을 이겨내고 있다.
18일 오전 대구 중구 동성로3가에 있는 한 여행사 앞. 대구우체국 소속 윤영찬(44'사진) 집배원은 참치선물세트를 들고 2층에 있는 여행사 사무실을 향해 계단을 2, 3칸씩 뛰어올랐다. "똑똑~, 선물 왔습니다." 6, 7명의 직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고객에게 선물을 전달한 그는 사무실을 내려오면서 PDA(휴대용 정보단말기)를 꺼내들었다. 그는 "PDA에 수령인의 이름을 기재하는 10초도 아까울 지경"이라고 했다.
윤 집배원의 오토바이 적재함에는 과일, 김, 참치, 식용유 등 설 선물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탑처럼 쌓여 있었다.
윤 집배원은 평소 오전 7시에 출근하지만 설 명절이 다가오면 오전 3, 4시에 출근해 자정이 돼서야 집에 들어간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아들 얼굴 볼 시간조차 없다. 대구우체국으로 들어오는 택배 물량은 평소 하루 3천~4천 개 정도이지만 명절을 앞두고는 8천~9천 개로 늘어나기 때문. 하루 1만5천 개까지 들어온 적도 있다고 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빛보다 빠른 속도로 뛰어다니지 않으면 하루치 분량을 다 배달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17일 오후 동구 신암동 건영아파트. 동대구우체국 소속인 편재국(35) 집배원이 사과선물세트를 들고 급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8층에 내려 선물을 전달하자마자 그는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편 집배원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설치된 적재함에는 사과, 귤 등 각종 설 선물들로 가득했다. 휴대전화가 수시로 울려댔다. "예, 10분 후에 도착합니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인근 건물 쪽으로 급히 뛰어갔다. 편 집배원은 "평소보다 배달물품이 6, 7배까지 늘어나 점심을 먹을 시간조차 없다. 선물이 너무 많아 우편물 배달은 아예 미뤄야 할 정도"라고 했다.
올해 설 선물은 사과와 김이 많다. 작년까지만 해도 굴비, 한우 세트 등 비싼 선물이 많았지만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집배원들은 "고가의 선물은 덩치라도 적지, 요즘은 부피가 큰 저가 선물이 많아 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택배를 배달하는 집배원들은 아파트 경비실 직원들과 친해야 한다. 맞벌이를 하거나 식구가 적은 탓에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명절 때는 경비원들과 친해야 합니다. 제가 할 일을 경비원들이 대신하니까요. 오며 가며 인사를 잘 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됩니다."
편 집배원은 "시간이 갈수록 고객들의 요구가 까다로워 힘들다"고 털어놨다. '집에 없으니까 직장으로 갖다 달라' '1시간만 기다릴 테니 시간에 맞춰 오라'는 요구를 자주 받는다.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가끔 이상한 사람이나 범죄자로 오해하는 고객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서명을 받으려고 PDA를 꺼냈는데 집주인이 흉기로 오해해 소리를 지르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해 한바탕 소란이 있었지요."
그래도 그는 "일은 바쁘지만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힘을 얻어요. 매일매일이 즐거운 명절이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우원식 "최상목, 마은혁 즉시 임명하라…국회 권한 침해 이유 밝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