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창문도 못열고 사는 소음·먼지 고통 아나"

안심연료단지 인근 주민들 계속된 이전요구 묵살 분통

먼지, 소음 등으로 주민들의 민원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는 대구 동구 안심연료단지.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먼지, 소음 등으로 주민들의 민원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는 대구 동구 안심연료단지.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40년 넘게 먼지, 소음 등의 고통에 시달려온 대구 동구 안심연료단지 인근 주민들이 연료단지 이전 요구가 번번이 묵살되자 법정 소송까지 내겠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더는 못 살겠다=18일 오후 대구시 동구 율암 7통 경로당. 왼편에 시멘트 공장이 버티고 있고, 오른편에는 레미콘회사가 있다. 주변은 온통 잿빛이었다. 공장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음, 희뿌연 모래 바람에 이내 눈물이 맺혔다. 이곳은 연탄 공장, 레미콘 공장, 아스콘 공장 등이 밀집돼 있는 안심연료단지. 골목길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이곳은 8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경로당에 모인 10여 명의 어르신들은 주변 공장 탓에 피해가 많겠다는 말을 건네자 흥분했다. 임정임(72) 할머니는 "공장 먼지가 소리없이 사람을 죽인다. 우리 마을에서 죽은 사람은 주로 진폐증때문이었다"고 했다.

김태순(75) 할머니는 "우리 영감이 진폐증으로 기침과 가래가 너무 심하다"며 "아파도 돈이 없어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40여 년 전부터 이 마을에 연탄공장을 비롯한 공장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맑은 지하수가 흐르던 도랑에는 온갖 오염물로 들어찼다. 공장 내에 흑빛의 무연탄이 산처럼 야적돼 있어 바람이 불면 비산먼지가 퍼져 빨래는 검게 변하고, 창문도 열지 못한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350여 가구가 사는 율암 6통 주민들도 고통을 겪고 있다. 베란다 바닥을 닦아 검게 변한 휴지를 내보인 조순자(55'여) 씨는 "여름에는 더워도 창문을 못 열어놓고 빨래를 10분만 놔둬도 새까맣게 변해버려 여기선 흰옷을 못 입는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직접 나선다=십수 년 동안 고통에 시달리던 이곳 주민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섰다. 대구시가 TF팀까지 구성하고도 이전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역학조사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탓이다.

안심2동주민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가 중심이 돼 이곳 주민들의 X-레이, CT 촬영 등을 통해 폐질환을 확인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비산먼지로 인한 신체적 질환이 확인되면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제소할 계획이다.

또 결과에 따라 손해 배상 소송도 내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자치위는 16일부터 안심연료단지가 처음 만들어졌던 1971년부터 이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신상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은희진 자치위원장은 "1970년대부터 살아온 주민 500~600명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한 뒤 폐질환 등이 확인되면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이전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했다.

한 주민은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전을 약속했지만 40년 넘게 변화가 없다. 주민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주민들의 건강검진이 순조롭게 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라며 "시도 이전을 위해 노력을 했지만 업체 측의 이전 거부로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연료공업조합 이기호 상무는 "건강검진을 받겠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까지 공장 근로자 중 진폐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실제로 외부 전문공인기관에 의뢰해 비산먼지 공해 측정을 해도 허용치 내로 나왔다"며 "대구시는 대안도 없이 쫓아내려고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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