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400년 만에 '정치 섬' 영남에 부는 바람

100년 전인 1909년 이전까지만 해도 현 대구시청 주차장 부지엔 상덕사(尙德祠)란 사우(祠宇)와 사우의 건립 유래를 기록한 비석, 그리고 비각이 있었다. 1628년 세워진 상덕사는 조선조의 야당 남인(南人)의 본거지로, 정치적으로 고립된 '섬'과 다름없던 경상도에 세워진 서인(西人)'노론(老論) 세력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지금 상덕사는 없어지고 비와 비각만 대구시 중구 남산동으로 옮겨졌지만, 이 흔적은 400년 지난 오늘, 정치적으로 외로운 '섬'인 영남, 특히 대구경북이 처한 정치 상황을 연상시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조선 중후반 이후 당파(黨派)의 등장으로 영남, 즉 경상도를 근거로 한 남인사림은 주류의 집권 세력 서인'노론파에 밀려 권력으로부터 멀어졌다. 경상도는 조선 8도 중 가장 많은 71개 군현(郡縣)의 고을과 인구, 인재에도 정치적으로 찬밥 신세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나 정조 시절 등 한때 남인이 중용됐지만 일시적이었다. 과거 박정희 시절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호남과 영남 인물을 발탁, 기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조선조 당시 대구에 있던 감영에 부임한 경상도관찰사(감사)는 대체적으로 서인'노론파였다. 물론 비주류 남인의 '소굴' 같은 곳이었기에 비교적 영남 사림에 우호적인 인물이 파견됐다. 자연스럽게 감사의 주요 임무엔 남인 텃밭에 친(親)정부, 친노(親老) 분위기를 조성하는 '남인의 노론화'(南老化) 작업도 있었다. 오늘날 SOC 사업 추진으로 반대 민심을 얻고자 하듯 남인의 환심을 사려는 문묘종사나 서원 건립 등 '유림 프로젝트'가 이뤄진 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구 상덕사도 그 흔적이다. 건립 계기는 현종 임금 때 심한 흉년 속 부임한 이숙 경상감사가 선정을 베푼 것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건립에는 영남에 뿌리내린 집권 세력의 입김도 작용했을 것이다. 상덕사엔 점차 역대 주요 경상감사들의 위패들도 봉안됐는데 하나같이 서인'노론파였다. 사우 현판도 노론의 거두 송시열이 썼다. 남인 소굴에 반대 세력의 연착륙을 노린 것이다. 반대파 인물을 기린 사우 건립과 배향은 영남 남인 포섭이나 우호적 여론 조성을 위한 전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상덕사는 그 상징이었던 셈이다.

4월 총선이 눈앞에 다가왔다. 여야 없이 쇄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400년 전 야당 남인의 터전 포섭을 위해 영남의 본거지 대구에 상덕사를 세운 심정으로, 경상도 입성을 노리는 야당에 부는 바람은 더욱 거세다. 갓 출범한 민주통합당이 취약지 또는 당선 가능성이 낮은 험지(險地)에 비중 있는 후보를 내는 '사지입성'(死地入城)의 공천 전략 바람이 부산에서부터 시작해 낙동강을 역류, 대구경북으로 북상하면서 영남권을 휘감고 있다.

민주통합당 깃발 아래 부산 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사상구)을 비롯해 문성근 최고위원(북'강서을),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장관(부산진) 등 소위 '문성길'이란 3인방을 필두로 전현직 의원 등이 줄줄이 나서고 있다. 조선조 경상좌도(부산)와 경상우도(경남도)를 지나 낙동강을 따라 서울까지 '낙동강 바람'을 북상시키겠다는 복안인 듯하다. 김부겸 최고위원도 안전한 경기도의 지역구를 던지고 한나라당 텃세가 어느 지역보다 강한 대구 출마를 선언하고 낙동강풍에 몸을 실었다.

4월 총선이란 전초전을 통해 한나라당의 텃밭이자 철옹성 같은 영남성을 허물고 12월 대선 입성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민주통합당은 출범 후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최고위원회의를 18일 부산에서 개최하고 낙동강 바람의 진원지가 부산이 될 것임을 기원했다. 이전에도 한나라당 일색의 영남권 공략을 위한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강철 대통령 특보가 대구에서 두 차례, 민주당의 조순형 대표가 한차례 대구에서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아성을 허물지 못했다.

올핸 20년 만에 총선, 대선을 함께 치른다. 한동안 경상도 특히 대구경북은 특정 정당이 독식,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되면서 '섬'이 됐고, '영남'은 '영~ 남의 지역'처럼 비쳤다. 여야 모두 쇄신과 변화, 새 정치를 외치는 올해, 경상도의 정치 기상도는 어떻게 될까, 상덕사 건립 같은 일이 있을까 자못 궁금할 뿐이다.

鄭仁烈/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