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女人天下

요즘 들어 신문지상에 '女人天下'(여인천하)라는 제목이 자주 눈에 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회동을 두고 이르는 비유적 표현이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의 실질적인 당권을 모두 여성이 틀어쥔 것은 우리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두 여성 당수(黨首)가 유력한 대선 주자로 또는 킹메이커로 올 임진년 정국을 쥐락펴락하게 되었으니 여인천하라 할 만도 하다.

이 말이 널리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 '여인천하'를 원작으로 삼은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이다. 조선 중종의 계비(繼妃)인 문정왕후는 아들(명종)이 12살에 즉위하자 수렴청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왕후의 남동생인 윤원형의 첩 정난정 또한 비천한 출신에도 불구하고 권세를 누리며 정경부인의 작호까지 받았던 게 소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정시대에는 여인천하가 더러 있었다. 중국에는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있었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도 유명하다. 신라의 선덕여왕은 선정을 베풀었다.

민주공화정을 표방한 현대에 이르러서도 민의(民意)에 의한 여인천하가 시나브로 등장했다.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는 1980년대를 풍미했고, 인도 최초 여성 총리인 인디라 간디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의 첫 여성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과 호주 최초 여성 총리인 줄리아 길라드, 태국 첫 여성 총리 잉락 친나왓은 지금도 권좌에 앉아 있으며, 지우마 호세프 현 브라질 대통령도 여성이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오늘날과 같은 여성의 보편적인 참정권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정치판에서 오랜 투쟁 끝에 얻은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다. 의회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1928년에야 남성과 동등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고,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내세웠던 공화국 프랑스에서도 여성들이 의정 단상에 오를 권리를 얻은 것은 혁명이 일어난 지 150년 만인 1940년대였다.

일부 아랍 국가는 아직도 정치가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남성천하'로만 남아있다. 그런데 우리는 건국 60여 년 만에 여성 대통령 등장 가능성이 적지 않으니 여인천하가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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