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걸음 큰 흔들림-변미영
화가에게 전시는 아주 중요한 행위이다. 작품의 주제가 정해지고 작업이 진행되는 이 과정은 마치 성자의 길을 걷는 듯하다. 냉정한 이성의 칼날로 감성을 잘라내어 화면을 메우는 과정은 매우 엄격하고 예리하여 조금의 나태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작업과정을 사랑하고 즐긴다. 이렇게 생성된 그림들은 감상자들과의 공감을 형성하기 위한 장이 필요하다. 그것이 개인전, 초대전, 기획전, 여러 화가들이 함께 전시하는 단체전이 되기도 한다. 전시가 열리면 화가는 여러 층의 다양한 감상자들의 감상과 평들을 진지하게 나누게 된다. 이를 통해 화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객관적으로 관조하고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특히나 감상자들과 함께 술판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화가는 감동적인 생명력을 얻는다.
얼마 전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 때 일이다. 12월 겨울바람은 가벼운 흔들림을 전해왔다. 추운 날씨에 관람객들이 뚝 끊긴 상태였다. 일상이 궁지로 몰아가듯 틈을 주지 않고 답답한 하루였다. 나의 사소한 지루함은 말라가는 장미의 애틋함처럼 치달았다. 그때 전화기의 문자음이 울렸다. 전시 마지막 이틀 전 이었다. 몇 년째 나무를 같이 공부하고 있는 모임의 멤버 세 사람이 서울 전시를 보러온다는 소식이었다. 짧게 비명을 질렀다. 이 멤버들은 평소 내 작품세계에 대해 많은 공감과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다. 내 전시가 열리는 곳이면 빠지지 않고 배경이 되어주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바쁜 하루 일정을 빡빡하게 해치우고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로 급히 온다는 그들의 소식은 지루함에 말라있던 내게 생명을 부여하는듯 했다. 그들은 전시 마감시간이 임박해서야 도착했다. 허겁지겁 그림들을 둘러보는 와중에서도 작품에 관해 다양한 질문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오후 6시30분! 전시장 문은 닫히고 대구행 기차는 저녁 8시! 함께할 여유시간은 단 30분!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공간에서 30분을 300분의 질감으로 보내야 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전시장 가까운 식당가를 찾았다. 급한 대로 들어간 곳은 전통전이 주 메뉴인 식당으로 분위기가 생기있는 빠르기 비바체(vivace) 같았다. 우리는 술과 안주를 최대한 시켜놓고 초스피드로 전투하듯 마시고 먹고 토론했다. 작품이야기와 인생이야기는 술과 안주에 섞여 만리행(萬里行)으로 치달았다. 30분은 예술과 삶을 논하기엔 물리적으로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다. 멤버들은 너무 많은 아쉬움은 슬픔을 남긴다며 예약한 표를 공중분해시키고 10시 기차표로 바꿨다.
밤 10시 기차를 타고 그들은 갔다. 두어 시간 동안 나의 화풍에 관해 여러 관점의 견해들을 주고받으며 모두는 예술이 되었다. 그 안에 술이 있었다. 나의 멤버들은 찰나적으로 전생의 한 장면이 획하고 지나가듯 가벼운 걸음으로 왔다 갔다. 화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예술을 생성한다. 이 가벼운 걸음은 화가의 인식에 큰 흔들림으로 진동했고 새로운 창작을 위한 동력이 되었다. 흔들림의 여진은 다음 전시 때까지 존재할 것이다. 화가는 누군가의 가벼운 걸음을 기다린다. 예술은 문화다. 문화는 공유하고 공감할 때 생명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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