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면 귀향길 고속도로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야 한다고 불평하시지요? 새터민들은 도로 위에서 며칠 밤을 새워도 좋으니 북녘 고향 동네 어귀까지만이라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9일 오후 대구 달서구 상인동 대구새터민선교센터에서 김영원(가명'48'여'함경남도 함흥) 씨와 이주순(가명'48'여'함경북도 회령) 씨가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눈시울을 적셨다. 김 씨는 북에서 영양실조로 죽은 두 아들, 이 씨는 고향에 홀로 남겨둔 친정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설 음식과 굶어 죽은 두 아들
김영원 씨는 북한에서 7년간 군인으로 복무했다. 상사로 전역한 뒤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다. 하지만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뒤 북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서 극심한 식량난을 맞아야 했다.
김 씨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어린 두 아들은 영양실조로 이 세상을 떠났다. "명절에 한 상 가득 차린 음식들을 보면 목이 멥니다.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지 못해 굶어 죽은 두 아들이 생각나서요."
1997년 압록강을 건넌 김 씨는 중국에서 10여 년 지내다 한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2009년 대구에 정착했다.
지난달에는 사촌동생이 탈북했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번 설에 만날 예정이다. "지옥 같은 생활만 아니었다면 고향에서 계속 살았겠지요. 두 아들과 함께 말입니다. 통일이 되면 고향에 꼭 돌아갈 겁니다. 돈 많이 벌어 설 선물 가득 싸들고 갈 겁니다."
◆통일 후 명절에 고향땅 밟을 것
이주순 씨는 두 아이의 엄마다. 하지만 가족 셋이 대구에 함께 모여 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씨는 2008년 둘째아들(8)만 데리고 탈북했고 작년 초에 갖은 고생 끝에 첫째아들(13)까지 데려올 수 있었다. 이번 설은 세 가족이 모두 모여 맞이하는 첫 명절이다.
이 씨는 아이들이 세상의 전부다. "큰아들이 대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육상부에 단거리 선수로 있어요. 대구시가 주최한 육상대회에서 초등부 1등을 하기도 했어요. 새터민 출신 1호 육상 국가대표로 키우고 싶어요."
그래도 명절이면 이 씨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은 고향에 홀로 남겨둔 친정엄마 때문이다. "탈북해 남한에서 만난 한 북한 출신 할머니께서 '한국전쟁 직전에 딸을 황해도 개성에 시집보냈는데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지금 살아있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이셨어요. 지금 북한에 있는 친정엄마를 그리는 제 마음이 그래요."
그는 잘 키운 두 아이를 데리고 명절에 고향땅을 밟는 것이 꿈이다. "통일이 오래 걸린다면 남북 왕래라도 허용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때 친정엄마를 만나서 잘 자란 손자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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