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의 한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사로 근무하는 박영미(가명'35) 씨는 지난달 교장과 행정실장으로부터 '일을 그만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0년부터 일해왔고 2007년에는 고용을 보장하는 무기계약까지 한 터라 박 씨에겐 충격이었다.
박 씨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일해 온 직원을 말 한마디로 해고하려는 학교 측의 태도에 실망했다"며 "정부는 공공부문 고용을 안정화한다지만 무기계약을 한 직원에게도 해고를 종용하는 것이 학교 현실이다"고 했다.
경북의 한 초등학교 과학 보조교사인 정명희(가명'28) 씨는 올해 3월이면 근무한 지 2년이 돼 무기계약 전환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 학교 교장은 지난달 초 "학교장회의에서 비정규직을 축소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후임으로 오는 교장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다른 학교를 알아보라"고 정 씨에게 말했다.
정 씨는 과학보조뿐만 아니라 행정실 직원이 병가를 낼 땐 사무원 역할을 하며 전화도 받고 민원도 처리했다. 그렇기에 학교 측의 태도가 더욱 원망스러웠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정말 섭섭하고 억울하다.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고 했다.
정부가 올해 초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추진 지침'을 내놓으며 고용 안정에 나섰지만 대구경북의 초'중'고교 내 비정규직들은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 측이 해고를 강요하거나 무기계약을 회피하는 등 학교 현장에서의 고용안정은 여전히 먼 이야기다.
대구시와 경북도교육청에 따르면 학교 비정규직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초'중'고교 비정규직은 각각 2009년 5천216명, 6천870명에서 지난해 6천14명, 8천293명으로 각각 13%, 17%씩 증가했다.
'학교회계직'으로 불리는 학교 비정규직은 업무가 세분화되면서 직종도 영양사, 조리원, 조리사, 교무보조, 수업보조, 도서관 사서 등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다.
전국교육기관회계직연합회 경북지부 김연주 사무처장은 상담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열악한 고용 현실을 피부로 접하고 있다.
김 사무처장은 "대구지역 학교 가운데는 무기계약 의무를 피하기 위해 몇몇 학교끼리 1년 단위로 도서관 사서를 맞교환하기도 한다. 또 경북의 한 학교는 무기계약을 약속해놓고도 인사이동으로 교장이나 행정실장이 바뀌자 나 몰라라 하기도 했다"고 했다.
올해 초 경주에서 두 초등학교가 통폐합하면서 학교 측은 올해 3월 무기계약을 앞둔 조리원과 근무한 지 4개월밖에 안 된 조리원 등 2명을 내보낼 예정.
경북도교육청 곽경록 학교회계직 담당 사무관은 "앞으로 방문지도를 늘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무기계약 회피 같은 문제점이 적발되면 교육청 차원에서 일선 학교에 행정 제재를 가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