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가래떡/자연스레 나이들기/유년을 그리며/근하신년

◆수필-가래떡

설이 다가오면 가래떡을 뽑던 생각이 난다. 큰집이라 7남매나 되는 대식구다보니 가래떡을 1말5되나 뽑는다. 5되는 흰쌀로 제사에 올릴 떡, 손님접대용으로, 1말은 싸라기 쌀로 그므스럼하게 뽑아서 식구들이 먹는다.

떡을 일찍 뽑으면 설 되기 전에 많이 먹기 때문에 우리 집은 항상 그믐날 뽑는다. 아침 일찍 엄마가 방앗간을 나서면 가래떡 직전에 맛있는 백설기를 맛보기 위해 서로 따라가려고 언니들과 다툰다. 방앗간에 줄을 서서 기다려 완성된 뜨거운 떡을 한 다라이씩 머리에 이고 엄마 뒤를 따른다. 말랑한 가래떡을 엿에 찍어먹으면 정말이지 꿀떡이다. 이 맛에 설을 손꼽아 기다린다. 저녁부터 썰기 시작해 교대로 썰다 보면 설날 아침이 밝아온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광주리에 한가득 있던 떡은 벌써 바닥이 보일 정도다. 그럼 제각기 신문에 싸서 언니들은 장롱 위에 키 작은 나는 찬장 깊숙이 숨겨 놓는다. 설이 지나고 먹을 것이 없어지면 싸놓았던 떡을 꺼내 연탄불에 구워 먹는다. 볼록볼록 노릇하게 구워진 떡은 참으로 맛나다.

이제 쉰을 넘어 나의 어린 시절 명절을 추억하며 가래떡을 준비한다.

이명숙(대구 북구 산격4동)

◆시-자연스레 나이 들기

일요일 아침이다.

아빠는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기 전에

염색약을 가지고 화장실에서 나온다.

그리고 엄마한테 흰머리 부분에 염색약을 발라달라고 한다.

엄마는 염색약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며 아빠한테 핀잔을 준다.

일요일 오후이다.

엄마는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뒤

족집게를 가지고 큰 방에서 나온다.

그리고 아빠한테 흰머리를 뽑아 달라고 한다.

아빠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엄마한테 큰소리친다.

나이 들어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조금이라도 어려보여야

부끄럽지 않다.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믿는다.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도

하지만 그렇게 믿지 못한다.

사실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장희지(대구 북구 고성동3가)

◆시-유년(幼年)을 그리며

오늘은

무척이나 돌아가고 싶다.

내 그리움의 품속으로

푹 파묻히고 싶어,

진정 돌아가고 싶다.

어릴 적

그 아름답던 유년(幼年)의 향기(香氣).

지금도 콧속에서 맴도는,

눈물겹도록 만나고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지나가고 사라진 것은 아름답다고 했지만,

오늘따라

더욱더 빛나며 반짝반짝

내 마음속에서 숙성하며,

고운 빛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묵은 지들.

오늘은 무척이나

추억의 그리움이 용솟음치고,

내 누이의 그네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예쁜 손짓을 한다.

그때 그 시절

아련한 동심에 푹 젖어버리고 싶다.

내 어머니 젖무덤같이 편안한

유년의 마당에서 맘껏 뛰놀고 싶다.

정창섭(밀양시 내이동)

◆시-근하신년

태고의 밤바다에서

펼쳐지는 용들의 만찬에

초대되었네

때로는 부드럽게

또한 거칠게

하얀 포말을 토해내며

현란한 춤사위에

내 몸은 오그라들어

넋을 잃었고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은

다시금

나를 전율케 한다

그 용들이 세월 먹고 자라

거대한 흑룡이 되어

무쇠발톱 세우고

희망이란 여의주 입에 물고

두 눈 부릅뜨고

동강난 이 산하

구석 구석 어루만지며

민족의 자긍심

독도 지키려 오고 있네

저 번뜩이는 비늘을 보라

우리들의 희망이

불끈 불끈 솟구치지 않느냐!

다 함께 나아가 맞으라

북을 울리고 나팔을 불어라

분명 벅찬 새해가 오고 있다

흑룡이 몰려온다

우리 모두 희망가를 부르자

내일을 위하여…

이수자(대구 북구 학정로)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남윤광(대구 수성구 범물동)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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