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시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

사랑할 때만 실체가 돋아나는 종족이 있다, 그들이 속삭이는 언어는 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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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뭇잎 몇 개 노오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저것이 급진 오랑캐들이다

오늘은 떨어지는 나뭇잎 몇 개 밟으며 새 한 마리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다, 저것이 오랑캐의 유일한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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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검은 스웨터를 입은 새

  박정대

 

몽상적이면서 지적인 시를 보여준 박정대 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인은 '시란 무엇일까'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네요.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한 듯합니다. 물론 그것은 논리적이고도 명쾌한 것은 아니지요. 시의 정의가 완료되는 순간, 시인에게 시는 사라질 것입니다. 열려 있는 가능성 때문에 시는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시인은 시란 실체가 없는 존재에게 몸을 부여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마치 없는 듯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로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사랑 같은 것이지요. 또 시는 거칠어서 세계를 급진적으로 장악하는 오랑캐라 하네요. 허공을 가로지르는 구체적인 새를 자신의 영혼으로 생각하는 원시적 건강성을 지닌 존재.

시인의 결론은 '시는 검은 스웨터를 입은 새'라는 겁니다. 왜 검은 색이냐고요? 그것은 깊이의 색이잖아요. 이제 어려운 말로 정리하자면, 시란 비가시적 세계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오묘한 정신적 과정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래도 '시, 검은 스웨터를 입은 새'라는 말보다 맛도 없고 폼도 안 나지요? 시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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