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채널] 천주교도 '정약용'의 배교, 과연 진실은…

KBS1 '역사스페셜' 26일 오후 10시

다산 정약용의 또다른 이름, '사도 요한'.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신을 향한 믿음은 곧 이단이자 죽음을 의미했다. 정약용은 왜 신을 믿었는가. 그의 형제 정약전, 정약종 또한 천주교도의 길을 걸었다. 1801년, 신유박해. 살아남은 정약용과 정약전. 그들은 과연 신을 버렸는가. KBS1 TV '역사스페셜-정약용 3형제, 과연 신(神)을 버렸나?'편이 26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정약용은 초기 천주교의 핵심인물이었다. 1846년 조선에 온 제 5대 천주교 조선교구장 다블뤼가 집필한 '조선 순교사'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실학자 정약용이 천주교에 관한 거의 모든 일에 처음부터 관계했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둘째 형 정약전과 셋째 형 정약종 또한 천주교도의 길을 걷는다.

정조가 승하한 이듬해인 1801년, 역사상 가장 잔혹하게 천주교도를 박해한 신유박해가 발생한다. 이때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3형제도 한꺼번에 의금부로 끌려오는 비극을 겪게 된다. 가장 늦게 천주교를 받아들인 정약종은 모진 고문에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끝내 순교한다. 남은 두 형제, 정약용과 정약전은 각각 경상도 장기현과 신지도로 유배를 떠난다.

신유박해가 있기 전, 정약용은 배교한 과거가 있었다. 노론이 정약용을 비롯한 남인들을 천주교와 관련됐다며 집요하게 공격했는데, 이때 국법에 따라 천주교를 버린 것이다. 그러나 정약용을 특별히 아꼈던 정조는 노론의 비난 속에서도 정약용에게 화성의 설계를 맡기는 등 끝없는 신뢰를 보인다. 정약용은 후견인인 정조가 승하하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신유박해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간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정약용의 배교 논란을 조명해본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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