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성기(60)는 주'조연을 넘나들며 폭넓게 사랑받고 있는 연기자다. 인자한 미소를 띠고 부드럽게 사람을 대하는 중후한 매력이 어느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1957년 영화 '황혼 열차'를 시작으로 연기 생활을 한 지 55년. 대한민국 나이로 환갑이지만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를 한국 영화계의 버팀목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안성기는 18일 개봉한 '부러진 화살'에서 법대로 판결해 달라며 사법부에 정면 도전하는 '고집불통' 김 교수를 맡아 열연했다.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속 캐릭터는 재판장과 타협하지 않는 인물로, "재판이 개판"이라며 울분을 토로한다. 이제껏 안성기의 모습을 알던 이들이 조금 놀랄 수도 있는 캐릭터다.
부드럽고 인자한 이미지를 쌓아온 안성기가 맡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역할은 아닐까라는 우려도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사회 고발적 성향이 짙고, 정치색도 드러날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안성기는 그간 정치적 입장을 공식적으로 언급해 온 적이 없다.
영화는 사법부에 정면 도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무명 배우 섭외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정지영 감독은 "'남부군'과 '하얀 전쟁'에서 함께한 안성기를 찾아가 이전 작품도 정치'사회적으로 껄끄러웠지만 평가가 괜찮았고, 이 작품도 안성기와 하면 성공할 것 같다"며 대본을 건넸고, 이틀 뒤 안성기로부터 출연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솔직히 사회성이 짙고, 주제의식이 강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완성도도 있고 영화'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참여했다는 이유를 밝혔었죠.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관객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결과가 내가 참여하게 된 이유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고발해야지'라는 마음이나 '예술적인 영화니까'라고 생각하는 건 시작은 다르지만, 받아들이는 결과는 어찌 됐든 같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성기는 "극중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가진 모습을 많이 자제하려고 노력했다"며 "주인공을 하면 보통은 관객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좋은 사람, 좋은 이미지를 가지려고 하기 마련인데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려 했다. 그런 점이 못 보던 모습이라 좋다고 하더라"고 즐거워했다.
'부러진 화살'은 정 감독이 영화 '까' 이후 13년 만에 연출하는 작품. 안성기는 '남부군' '하얀전쟁'에 이어 20년 만에 배우와 감독으로 정 감독과 재회했다. 예전에 함께했던 많은 동료들이 떠나고 새로운 인물들로 영화계가 재편된 게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는 안성기. 그래서 "오랜만에 예전에 함께했던 정 감독과 작업해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요즘 현장에서는 배우, 스태프, 감독 할 것 없이 내가 최고 선배"라며 "서로 편하게 대하기 위해 감독님이라는 호칭 대신 감독이라고 줄여 부르는데 이번에는 '정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편했다. 내가 약간 기댈 수 있는 그런 마음이었다"고 좋아했다.
그의 말대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영화계는 변했다.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그에게 변화를 물었다. 그는 "예전에는 영화라는 것 자체를 사람들이 존중해주지 않았고, 메시지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며 "영화하는 사람들이 사회 비판 같은 것은 못하고, 사랑 이야기만 해서인지 주위에서 보는 시각도 좋지 않아 솔직히 속상했다"고 털어놓았다.
"예전에는 장소 섭외를 할 때 '촬영 좀 해도 될까요?'라고 물어보려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잇, 필요 없어'라며 문전박대를 당했고, 천대받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영화 자체가 영향력도 커졌고, 잘 만들어지고 있어 어디를 가든 조금은 환대를 받죠."(웃음)
안성기는 또 "1970년대 후반 성인으로서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내가 영화를 평생 할 텐데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예전 연기자들을 막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요즘 사람들은 모르지만 예전부터 영화계를 봐온 사람은 '변했구나'라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내가 하나의 역할을 한 게 좋다"고 뿌듯해했다.
자신이 다른 배우들과 달리 오래 연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할까. "극중 김 교수가 본인의 원리원칙을 따지듯 저도 영화만 한다는 다짐을 했어요. 물론 김 교수와는 달리 부드럽고, 또 사람들에게 친화력 있게 해왔죠. 다른 부분에서는 거절도 못 하면서 살아왔지만 영화만큼은 대쪽같이 지켜왔는데 그렇게 55년을 버텼어요. 또 사업이나 다른 것들을 하며 왔다 갔다 했으면 안 됐을 텐데 배우로 쭉 있어 와서 저를 찾는 것 같아요."(웃음)
안성기는 같은 날 개봉한 '페이스 메이커'에서는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가대표 마라톤 감독을 맡았다. 조연이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없어서는 안 될 캐릭터. 그는 "영화 두 편이 동시 개봉하는 일은 데뷔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무대인사 등 영화 홍보를 위해 솔선수범하며 뛰고 있다.
영화계에서 연기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는 직함도 여러 가지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굿다운로더캠페인 공동위원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의 일로 바쁘다. 대부분이 영화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들이다.
안성기는 바쁘지만 만족하고 재밌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에 앞서서도 굿다운로더캠페인에 참여할 가수와 배우들을 섭외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그는 "선배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 같아 하는 일들"이라며 "모두 어떤 의미를 둔다는 생각보다 좋아서 하는 일들이다. 또 '내가 떠나면 후배들이 맡아서 잘 해주겠지'라고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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