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adaptation)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작품을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고쳐 쓰는 일'을 말하는데 그중에서도 '주로 소설, 서사시 등의 문학작품을 희곡이나 시나리오 등의 극본으로 고쳐 쓰는 일'을 말한다. 그래서 연극의 포스터나 프로그램에서 각색이라는 말을 가끔씩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각색이란 말을 더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주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유명 소설이나 만화를 영화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제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해진 용어인 셈이다. 예전에는 각색이 주로 소설 등 극본이 아닌 문학 장르를 희곡이나 시나리오 등의 극본으로 고쳐 쓰는 것을 의미했지만 현재는 그 범위가 아주 넓어졌다. 크게 성공한 영화를 소설이나 만화, 뮤지컬로 제작하는 경우, 혹은 크게 성공한 연극을 영화나 뮤지컬로 제작하는 경우 등 실제 각색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다양하다. 하지만 이 또한 '어떤 작품을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고쳐 쓰는 일'이라는 각색의 의미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희곡에서 희곡으로, 시나리오에서 시나리오로 고쳐 쓰는 일, 즉 동일 장르 내에서 고쳐 쓰는 일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장르의 변화가 없더라도 그 작업을 각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여기서는 우선 몇 가지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작가가 자신이 쓴 연극대본을 다시 연극대본으로 고쳐 썼다면 각색이라기보다는 수정작업이다. 혹은 '작가의 다른 버전' '시즌2' 등 시대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말로 부를 수 있겠지만 결국 장르의 변화는 없기 때문에 각색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런 경우 1차적으로 고려할 점은 고쳐 쓰는 주체가 누구인지가 될 것 같다. 어떤 각색자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고쳐 쓴 희곡은 분명히 각색한 작품이 맞다. 즉 장르의 변화는 없지만 고쳐 쓴 주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더 중요하게 고려할 점은 작품의 재해석 여부이다. 원래 있던 것을 토대로 새로운 시각을 담을 때 비로소 각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각색의 본질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희곡을 재해석해 다시 희곡으로 각색한다는 개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특히 고전작품인 경우에는 현재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혹은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각색을 한다. 그리고 각색의 정도에 따라서는 각색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창작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경우도 있다. 주요 모티브를 중심으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시대나 인물, 배경 등 많은 것들이 바뀌어도 주요 모티브와 이야기 등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면 창작이 아닌 각색이 분명하다. 그리고 원작과 비교해 그 변화의 폭이 적고 재해석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정에 그쳤다면 그것은 각색이 아니라 정리, 즉 흔히 말하는 '어렌지'(arrange)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연출자들은 어렌지 작업 후에 각색이라는 역할을 자신의 이름 앞에 떡하니 붙이기도 한다. 작가가 수정작업을 할 수 있는 경우라면 회의를 거쳐 작가에게 대본의 수정을 의뢰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해석의 시각을 찾아보기 힘든 어렌지 수준의 수정작업에 굳이 각색이라는 말을 그것도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이려고 하는 이유는 각색에 대한 이해 부족과 공명심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각색 작업의 주체가 연출자이기 때문이다. 각색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있던 것을 토대로 재해석하는 것이고, 그것은 연출자의 주요 역할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각색을 위한 각색, 심지어 공동작가의 위치까지 요구하는 행위 등은 결국 연극 작업에서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각색의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공동 작업을 망치고 결국 작품까지 망치는 셈이다. 재해석을 위해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고쳐 쓰는 것이라면 이는 각색이 아니라 대본 수정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대본 창작과 수정, 각색과 어렌지 등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차이점을 알고 있을 때, 자신의 역할과 타인의 역할 그 경계선 사이에서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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