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大幹 숨을 고르다-황악] 5. 개구리봉-북암마을-운수봉

만석꾼 장승원 개구리봉에 묘자리, 후대 국무총리 장택상 배출

설 연휴에 황악산에 눈이 내렸다. 눈꽃이 핀 나무와 등산로가 산을 찾은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겨울 황악산은 눈이 많기로 유명하다.
설 연휴에 황악산에 눈이 내렸다. 눈꽃이 핀 나무와 등산로가 산을 찾은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겨울 황악산은 눈이 많기로 유명하다.
개구리봉에 조성된 장승원의 묘.
개구리봉에 조성된 장승원의 묘.
구름이 시작되는 운수봉에는 산꾼들의 쉼터가 마련돼 있다.
구름이 시작되는 운수봉에는 산꾼들의 쉼터가 마련돼 있다.

임진년 설날이 밝았다. 어릴 때 설날은 마냥 좋았다. 시골에선 설날 며칠 전부터 동구 밖에 나가 외지에 살던 친척들의 고향 방문을 마중했다. 또 설을 며칠 앞둔 장날에는 집안 어른께서 소에 수레를 달고 인근 큰 장에 나가 가래떡과 차례에 쓸 음식을 장만해 왔다. 설빔으로 옷과 신발이 생겼다. 친척들과 모여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었다.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난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지금보다 훨씬 부자였던 같다. 행복지수는 훨씬 높았다.

설 이튿날, 황악산을 오르기 위해 북암마을을 찾았다. 황악산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은 북암마을을 거쳐 운수봉으로 올라 황악산 등정에 나선다. 예전에는 주로 직지사 경내로 들어가 운수암 옆으로 난 등산로를 통해 정상을 밟았다. 하지만 사찰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어 산꾼들은 북암 길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직지사로 들어와 매표소를 오른편으로 끼고 돌면 직지문화공원 끝에 있는 도자기 박물관과 백수문화관이 보인다. 이를 버려두고 무궁화공원 방향으로 접어들면 북암마을 이정표가 반긴다.

북암마을은 마을 뒤쪽에 있는 암자가 직지사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북암(北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전에는 민박마을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숙박손님은 거의 찾지 않는다. 가끔 추억을 간직한 단체손님들이 찾지만 명성이 바랬다.

◆명당 개구리봉에 얽힌 전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에 나지막한 야산이 있다. 직지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개구리봉(蛙峰)이다. 국무총리를 역임한 창랑(滄浪) 장택상(張澤相)의 부친 장승원(張承遠)의 묘소가 자리한 명당으로 유명하다.

개구리봉은 풍수로 볼 때 개구리가 웅크리고 있는 형세다. 인근 직지사 대웅전 뒷산인 북봉(태봉)으로부터 이어진 산으로 인접한 북암저수지의 축조와 관련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로부터 북봉은 뱀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사두혈(蛇頭穴)의 명당터로 꼽혔다. 1399년(정종 원년) 조선 2대 정종(定宗)의 어태를 봉안한 태봉(胎峰)이 되면서 명당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구미 인동의 만석꾼인 장승원은 일찍이 명당으로 소문이 난 태봉 인근의 개구리봉을 사들였다. 이곳을 자신의 묏자리로 점찍어 놓았다. 그는 풍수에 심취해 전국의 명당이라고 소문이 난 땅은 찾아가 모두 사두었다고 전한다. 장승원이 세상을 떠나자 후손들이 지관을 보내 개구리봉이 장지로서 적합한지를 살펴보게 했다. 지관은 가히 천하의 명당임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나 사두혈의 태봉은 뱀을 상징하고 마주한 개구리봉은 개구리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으로 두 동물이 상극인지라 후손이 발복하지 못할까 염려된다고 지관은 말한다. 이에 두 가지의 방비책을 제시한다.

먼저 사두혈의 뱀 기운이 개구리봉으로 흘러들지 못하도록 두 봉우리 사이를 깊이 파내어 완전히 독립된 산으로 만들 것을 주문했다. 또 물을 좋아하는 개구리가 위급 시 뱀으로부터 피난할 수 있도록 인근에 큰 저수지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후손들은 많은 인력을 동원해 산 능선을 파내 논을 만들었다. 또 개구리봉 앞에 봉우리와 똑같은 크기의 저수지를 만든 뒤 묘역을 조성했다. 이 때문에 북암저수지는 수문이 없다. 물을 가둘 목적으로 만들어져 물을 뺄 필요가 없었다. 인동 장씨 집안의 당시 위세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잡목을 헤집고 개구리봉에 오르면 왕릉에 비견될 만큼 큼지막하게 조성된 묘역이 나타난다. 무덤 앞 양쪽에 양 형상의 석물과 문인상이 묘를 지키고 서 있다. 석물들이 사악한 기운을 막아준다는 것. 주변에 아름드리 도리솔이 묘지를 둘러싸고 있어 한눈에 대단한 집안에서 잘 조성된 묘역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북암저수지를 내려다보니 정말 한 번 도약으로 개구리가 저수지로 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김천문화원 송기동 국장은 "개구리봉 전체가 묘역이다. 산 아래에 석축을 쌓아 형태가 왕실에서 태실을 조성할 때의 축조법을 따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움츠린 개구리 등에 무덤이 조성돼 위급할 때 잘 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무덤을 둘러보고 위쪽에 난 길을 따라가니 정말 산 능선을 잘라 논으로 일궈 놓은 모습이 보였다. 산과 산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논에 물을 채워 놓아야 한다는 지관의 말에 따른 결과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벼 밑동이 잔설에 묻혀 있다.

◆북암과 선승을 둘러싼 사연

논을 가로질러 마을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낯선 이의 발자국 소리에 동네 강아지들이 합창으로 반긴다. 북암마을 민박촌을 가로지르면 현재 직지사로 딸린 일곱 암자 가운데 가장 지척에 자리한 북암이 나온다.

북암은 조성연대에 대한 기록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연산군의 불교 탄압으로 당시의 대표적인 선승(禪僧) 벽계정심(碧溪淨心)선사가 이곳에 은거하며 기울어져 가던 조선 선종의 맥을 이은 것으로 유명하다. 선사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머리를 기르고 과부를 얻어 직지사에 채소를 공급하며 생계를 이었다. 부인은 남남처럼 사는 부부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3년 만에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하자, 그는 은으로 만든 표주박을 부인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부인이 마을 앞 우물에서 표주박으로 물을 떠 마시고는 표주박을 버린 채 3년동안 새 남편을 얻으려고 전국을 돌아다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북암으로 돌아왔다.

이에 선사는 "나는 부인이 다시 돌아올 줄 진작에 알았소"라고 했다. 부인이 어이없어하며 이유를 물은즉"내가 준 표주박이 우물 앞에 그대로 있을게요. 나는 세상에 태어나 중이 된 이래 남의 것을 단 한번도 가진 적이 없소. 그래서 그 인덕으로 내 것이라 하면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다오."라고 했다.

부인이 반신반의하며 우물로 가보니 3년 전 자신이 팽개친 표주박이 그대로 있어 탄복했다. 다시는 다른 마음을 먹지 않고 선사를 하늘처럼 받들어 모셨다고 전해진다. 지금 북암은 그 때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전각이 새로 들어섰다.

조선 선종의 5대 종사를 지낸 벽송(碧松) 지엄선사(智嚴先師)가 정심선사를 찾았을 때의 일화 또한 유명하다. 지엄은 3년간 북암에 머물며 도를 물었으나 정심선사는 일만 시키고 한마디의 법문도 들을수 없었다.

지엄이 하직을 고하고 암자를 나서자, 정심선사는 큰소리로 지엄을 불러세우며 "내가 매일 밥을 짓고 차를 달이고 나무를 하며 밭을 매면서 설법을 하였는데 네가 몰랐으니 오늘 법을 받아라"하며 불끈 쥔 주먹을 내밀었다. 그제서야 지엄은 불법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름이 시작되는 운수봉

북암마을에서 왼쪽을 난 오솔길을 따라 능선을 오르면 산아래로 직지사가 보인다. 왼쪽으로 가면 태봉이 있는 북봉이요, 오른쪽으로 오르면 비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직지사 뒷산에는 노송들이 즐비하다. 원래 이곳에 학이 많이 날아 들어 황학산이라 불리었는데 학의 배설물이 독해 나무들이 고사하는 바람에 스님들이 학이 날아오지 못하도록 했다는 얘기를 간직한 곳이다. 오르막 길에는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럽다. 눈길과 길옆에 자란 푸른색의 산죽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산죽의 호위를 받으며 산을 오르는 재미가 쏠솔하다. 산길을 1시간여 올라 도달한 곳이 헬기장이다. 직지문화공원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합류한다. 몇년 전부터 단풍철이면 문화공원에서 이곳을 지나 운수봉을 오르는 '김천시민 황악산악축제'가 열리고 있다. 헬기장을 지나면 길이 많이 가파르다. 잔설이 묻어 있는 갈팍진 길을 오르자 괘방령~여시골산을 통해 백두대간을 오르는 길과 만난다. 얼마가지 않아 운수봉(668m)이 모습을 드러낸다. 운수봉은 직지사 산내 암자 중 가장 위쪽에 자리한 운수암의 뒷산이다. 황악산은 구름에 늘 덮여있는데 공교롭게도 운수암을 기준으로 구름이 시작된다 하여 구름 운(雲)자를 써 운수봉이 되었단다. 운수봉을 지나 2㎞를 오르면 정상 비로봉이 있다.

글'박용우기자ywpark@msnet.co.kr 사진 서하복 작가texcaf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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