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으로 산다는 한국인에게 빵은 기호품이었다. 밀이라는 원재료의 생소함으로 인한 차별성과 영양학적, 경제적 이유에서다. 빵이 밥의 대체재로서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생필품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은 그리 먼 세월이 아니다. '제빵왕 김탁구'라는 TV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것도 빵이 우리 일상에서 차지하는 사회학적 의미가 만만치 않다는 방증이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겉보기에도 아기자기한 제빵점이나 초콜릿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들이 어김없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아침마다 길쭉한 바게트를 사거나 갖가지 초콜릿을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국적인 풍경이다. 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짧게는 수십 년에서 오랜 곳은 수백 년 된 가게들도 있다. 가족들이 대를 이어 직접 빵이나 과자를 구워내 현지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까지 제법 명소가 된 곳도 많다. 요즘 국내에서 무슨 블랑제리니 베이커리, 파티쉐, 크레페 등의 이름을 단 제빵'제과점들도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1960, 70년대 대구에도 런던제과, 삼송빵집 등 제법 이름이 알려진 제빵점들이 있었다. 당시로는 화려하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빵과 과자들을 구워내던 곳들이다. 여기에 찐빵이나 만두 등을 주로 파는 허름한 간판의 빵집들도 골목마다 한두 곳쯤은 있었다. 하지만 골목상권을 지키던 이런 작은 빵집들이 공장 빵과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에 밀려 흔적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큰 무쇠솥에서 찐빵과 만두를 꺼내 봉지에 담아주던 풍경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았다.
대기업들의 영세 자영업종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커지고 있다. 무슨 떼돈을 벌겠다고 빵과 같은 자잘한 것까지 넘보느냐는 곱지 않은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재벌 2, 3세들이 소상공인 업종에까지 손을 대는 것은 윤리적으로 생각해볼 문제"라고 한마디했다. 그러자 몇몇 기업들이 부리나케 제과'커피 사업에서 손을 떼고 순대와 청국장 사업을 접겠다고 발표했다. 상생 경영의 실천을 강조했지만 기업 이미지와 여론을 다분히 의식한 결정이다.
자의든 타의든 대기업들이 소시민에게 사업을 돌려주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잘한 일이다. 기업들의 이런 결정이 개성 있는 작은 빵집들을 다시 골목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통 큰 양보가 될지 기대해 볼 일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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