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 부키 펴냄
안데스 지역 학교 건립을 돕기 위해 페루를 방문했던 한 고교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마주쳤다. 공항의 포터, 버스 운전사, 이발사, 상점 점원 등 고교생의 눈에 비친 대다수 페루 노동자들은 노르웨이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조금도 일솜씨가 못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받는 임금은 턱없이 낮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저자가 미국 하버드 대학교 MBA과정을 밟을 때도, 코넬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도, 회사를 경영할 때도, 국제기구에서 일할 때도, 대학교수로 일하면서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5만 권에 달하는 장서를 수집했다. 이를 통해 주류 경제학에서 감추거나 애써 외면한 수많은 사상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원시시대 이래 부와 빈곤은 제로섬 게임이었다. 부는 기본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부의 소유주를 바꾸는 것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13세기 이후 이탈리아 베네치아나 피렌체 같은 도시국가가 이런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났다. 경작할 만한 땅이 거의 없었기에 제조업과 해외무역에 특화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순적인 것 같지만 국가의 부는 그들이 보유한 천연자원의 부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성공적으로 모방한 나라가 영국이다. 부가 모직공업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정작 그 원자재인 양모와 양모 세척 재료는 모두 수입산이었다. 모직공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보조금과 관세는 물론이고, 심지어 스페인산 양모를 모두 사들여 불태우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철저한 보호주의 정책이었다.
반면 실크와 최고급 옷감의 대명사였던 스페인은 16세기 이후 몰락을 거듭해 18세기에는 완전히 무너졌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스페인으로 흘러들었는데, 이런 막대한 재원이 생산시스템이 투자되지 않고 탈 산업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성공한 국가 영국은 제조업을 보호'육성했지만, 실패한 국가 스페인은 농업을 보호하려다가 제조업을 무너뜨린 셈이다. 그런데 유럽인들은 성공적인 산업보호에는 파괴의 씨앗이 내재해 있다는 것도 일찌감치 간파했다. 일단 성공하고 나면 절실했던 보호주의가 생산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는 탓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의 많은 지역에 적용되어 발전을 이끌었으나 오늘날 경제학 이론에서는 잃어버린 통찰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가난한 나라들에 산업보호 대신 개방과 자유무역, 탈규제를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하다. 바나나 생산에 특화를 조건으로 선진국들에 사기당하다시피한 1990년대 중반 에콰도르, 세계은행의 모범생으로 등장한 이후 극심한 경제난을 겪은 몽골, 그리고 페루는 면 때문에, 볼리비아는 주석 때문에, 레바논은 사과 때문에 몰락을 경험했다.
"고전 경제학자들이 자기들 공동체(선진국)에게는 해롭더라도 전 세계에 이로우리라고 판단하는 방안을 권고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라는 런던정경대학 로빈스 교수의 말을 곱씹어 봐야 할 시점이다. 500쪽, 2만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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