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들의 삶은 늘 팍팍하다. '치솟는 물가 속에 오르지 않는 것은 월급뿐'이라는 푸념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게다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억대 연봉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만 같다. 고액 연봉 뉴스를 접할 때마다 보통의 월급쟁이들은 평생을 벌어도 모을 수 없는 액수라는 생각에 부러움을 넘어 좌절감까지 든다. 내 손에 쥐는 것은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쥐꼬리만 한 월급뿐. 빠듯한 액수에 노후준비는 꿈도 못 꾼다. 2012년 대한민국의 월급쟁이들. 그들은 점점 더 심해지는 '양극화'에 불안감만 더욱 증폭되고 있다.
◆팍팍한 월급쟁이의 삶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에서 100인 이상의 사업장 764곳을 조사한 결과, 임금 협상이 타결된 기업의 평균 인상률은 5.4%로 집계됐다. 하지만 전년에 비해 4%나 오른 소비자물가를 감안하면 임금 인상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는 정부가 지난해 11월 말 금반지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소비자물가지수를 개편하고, 정책적으로 물가 상승에 제동을 걸어 통신요금 등 공공서비스 물가 하락(―0.4%)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소비자물가지수를 개편하기 전인 지난해 1∼10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4.4%였다. 지난해 농축수산물(9.2%), 공업제품(4.9%), 전기'수도'가스(4.8%), 집세(4.0%) 등의 품목이 모두 4% 이상 올랐다.
한국납세자연맹의 분석 결과는 정말 허탈감을 넘어 분노마저 들게 한다. 연봉 4천만원의 임금 근로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작년에 명목 임금이 5.2%(고용노동부 지난해 1~11월 협약 임금인상률) 상승해 형식적으로는 208만원의 수입이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손에 쥔 금액은 2만947원(1%)에 불과한 것. 가구 근로자의 연봉 인상분에서 물가상승분(4%) 160만원과 소득세(4인 가구 기본공제 등 평균 소득공제 적용) 29만3천436원, 4대 보험료 인상분 16만5천617원을 빼면 사실상 남는 돈이 없는 것이다.
납세자연맹은 "연봉 8천만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연봉이 416만원 오른 대신 물가상승률과 소득세, 4대 보험료로 나가는 금액이 438만7천362원으로 실질임금 인상액은 오히려 22만7천362원 마이너스가 된다"고 밝혔다. 납세자연맹은 작년 연봉과 올해 연봉인상액, 부양가족 수를 입력하면 실질임금을 자동으로 산출해주는 '실질임금계산기'(http://www.koreatax.org)를 개발해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런 수치가 아니더라도 월급쟁이의 삶은 늘 쪼들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조사한 지난해 100인 이상 대기업의 4년제 대졸 사원의 입사 첫해 평균 월급은 271만6천원으로 집계됐지만, 변변한 대기업 없이 중소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구지역의 특성상 봉급 수준이 전국 평균을 훨씬 밑돌고 있는 실정인 것. 지난해 9월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대구지역의 월 평균 임금은 172만원으로 집계됐다.
중소기업체 5년차인 이모(30) 씨는 "180만원 남짓의 봉급을 받아 매달 40만원을 넘어서는 아기 분유값과 기저귀값 대기도 벅차다"며 "더구나 기름으로 난방을 하는 주택에 살다 보니 겨울에는 매달 30만원가량의 난방비 부담도 커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심각한 임금격차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 30대 비금융 민간 기업 가운데 지난해 신입사원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5천900만원을 지급하는 현대모비스이며, 현대자동차와 SK텔레콤이 5천700만원, 기아차 5천500만원, 현대제철 5천3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가까스로 대기업에 입사한 극소수의 경우에 해당되는 먼 이야기다. 반대로 대졸자 중 월급 100만원도 못 버는 사람이 13%로 8명 중 1명꼴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인 것.
경북대를 졸업하고 지역의 중소기업에 입사한 장모(27'여) 씨가 받는 월급은 100만원 남짓. 초과근로 수당과 보너스까지 더해봐야 150만원을 넘어서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장 씨는 입사한 지 1년이 넘도록 집에다 손을 벌리는 처지다. 월세와 생활비, 차 할부금까지 감당하기에는 그녀의 월급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현실 물가와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장 씨는 "한 달 주유비만 20만원이 넘고, 휴대전화비와 인터넷 요금 등 통신비만 해도 10만원에 달하니 사실 월급을 받으면 고정지출로 다 빠져나가고 남는 게 한 푼도 없을 정도이다. 부끄럽지만 아직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산다"고 푸념했다.
김모(31) 씨 역시 비슷한 상황. 고향이 울진인 그는 지금 130만원 남짓의 월급으로 자취생활을 하면서 늘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김 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2년을 허송세월했고, 그 후에는 여러 대기업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떨어지고 말았다"며 "더 이상 백수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께 부담을 드릴 수 없어 성에 차지 않는 직장이지만 지금의 직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전문대 졸업자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24) 씨의 한 달 월급은 80만원 남짓. 하루 종일 3~5세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지만 벌이는 100만원에도 못 미친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문대 졸업자 중에서 100만원 이하 월급쟁이가 4명 중 1명꼴이라고 한다.
◆OECD 평균보다 양극화 훨씬 심각
우리나라의 임금 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경제활동인구조사(통계청)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임금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급이 가장 적은 1분위 계층과 월급이 가장 많은 9분위 계층의 임금 차이는 무려 5.4배였던 것. 임금 근로자를 9계층으로 나눠 임금 차이를 계산하니 9대 1 분위배율이 5.4로 임금과 관계된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2년 이후 임금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다. 임금 평균층(5분위 계층)과 최저층의 임금 격차 비율(5대 1 분위배율)도 높아졌다. 지난해 5대 1 분위배율은 2.4로 역대 최고였다. 5대 1 분위배율은 2005년까지 2.3이었고 2006'2007년엔 2.4였다. 2008년엔 2.1로 줄었지만 2009년부터 조금씩 오르더니 지난해 역대 최고치에 이른 것이다.
한국은 외국과 비교해도 임금 격차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9년 회원국을 대상으로 계산한 9대 1 분위배율을 살펴보면 한국은 4.69를 기록해 이스라엘(5.19), 미국(4.98)에 이어 세 번째로 임금 격차가 큰 나라였다. 9대 1 분위배율이 가장 낮은 벨기에(2.23)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2배 이상 두드러졌다. OECD 평균인 3.34와 비교해도 심각했다.
과세 대상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3천855만원. 5년 전인 2006년(4천47만원)보다 4.8% 줄었다. 이런 현상은 임금이 줄어들기보다는 저임금 근로자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면에 억대 연봉자는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 억대 연봉을 받은 회사원은 총 27만9천 명으로 2010년과 비교하면 42.3%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단순히 임금 격차만 분석해도 이렇게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지만 수치로 계량화되지 않는 각종 사내 복지까지 감안하면 근로자들의 생활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 임금이 높은 회사일수록 자녀 학자금 지원과 퇴직금 등의 복지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는 것. 대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이석동(52) 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학자금 지원을 받지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내 경우에는 별다른 지원이 없어 자녀 교육비 문제로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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