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70여 일 앞두고도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는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대구경북 유권자들의 눈길은 싸늘하기만 하다. 예전의 애정 어린 시선은 찾기 힘들다. '정신 안 차리면 안방에서도 경(更)을 칠 것' '그만 좀 싸워라' '제대로 좀 해봐라'는 말이 표심 잡기에 돌입한 한나라당 소속 예비후보들이 매일 받아쥐는 '옐로 카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특징이 있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은 싫지만 박근혜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총선에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한나라당 후보들은 선별적으로 심판해야 하지만 대선에서 박근혜를 밀어야 한다는 논리다. 매번 압도적 지지를 보내준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는 접었지만 당의 '마지막 구원투수'로 등장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만큼은 다르게 보는 시각이다.
결국 이 말은 '총선은 총선이고 대선은 대선이다'로 귀결된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박근혜 위원장을 팔면서 대선 승리를 위해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떠들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나아가 지역 국회의원들을 묻지마 식으로 한나라당 후보들만 뽑느니 야당 성향 후보들도 섞어서 뽑자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주장에는 역대 총선 때보다 야당의 후보 진용이 화려할 것이라는 기대도 담겨 있다.
대구지역 총선 예비후보인 A씨는 "잘한 것도 없는 사람들이 박근혜 비대위를 흔들고 있다는 지적을 많이 듣는다"며 "계파 간 정쟁만 일삼는 꼴이 보기 싫다는 비판을 들을 때에는 낯을 들기조차 민망하다"고 귀띔했다.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된다'는 주장은 지난 지방선거로 끝났다는 충고도 많이 듣는다고 했다.
이 같은 기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가 설 연휴 직후 발표한 대선 양자대결 조사에서 대구경북은 박 위원장(62.0%)이 안철수(31.6%) 서울대 교수나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72.8% 대 19.7%)보다 압도적 지지를 받은 유일한 지역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역 국회의원이 다시 출마한다면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지지하지 않겠다'는 답변(48.4%)이 '지지' 응답(32.8%)보다 훨씬 많았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을 예전처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지는 않겠지만 '대안은 박근혜뿐'이라는 인식이 공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대 행정학과 이해영(55) 교수는 이에 대해 "지역민들은 박 위원장에게서 신뢰의 이미지와 함께 향수를 떠올리고 있어 고정 지지층이 두텁다"며 "국회의원들에 대한 낮은 지지도는 지역민들의 동반자 역할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대구시당 관계자도 "대구 전체가 거대한 1개 선거구나 다름없는 만큼 4월 총선에서 이 같은 구도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박 위원장에 대한 지지는 지역의 위기의식과도 맞물려 있다"고 풀이했다.
대구경북이 현역 국회의원뿐 아니라 총선에 나서는 한나라당에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상황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역 의원들의 성적표가 나쁜 것은 동남권 신공항 무산 등 국책사업 유치 실패, 경제 불안, 잇따른 대통령 친인척 비리 등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것이다. 본지가 신년호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0% 이상이 현역 의원의 절반 이상을 물갈이해야 한다고 답했다. 예비후보 B씨는 "2040세대는 물론 기성세대에서조차 한나라당이 지역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다"며 "한나라당 명함 돌리기가 부끄러울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박 위원장이 더, 확실하게 변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실 한 보좌관은 "이명박 대통령은 리더만 기억되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류의 1인 중심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해 실패했다"며 "수평적 관계가 돋보인 노무현 리더십을 넘어서는 다원(多元)화된 소통형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과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상황에서 마지막 기대주인 박 위원장마저 무너진다면 지역은 정치적 공황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였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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