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인민재판에 부러지는 한국

나룻배에 탄 사람들이 오른쪽으로만 몰려 앉으면 배는 오른쪽으로 기울어 뒤집힌다. 반대로 왼쪽이 좋다고 몰려 앉아도 역시 왼쪽으로 기울어 뒤집힌다. 어느 쪽이 더 나쁘고 좋고를 떠나 함께 무사히 강을 건너려면 지나치게 좌우를 가려서는 안 된다. 함께 균형과 평형을 이루며 가되 배에 구멍을 뚫는다든가 노를 서로 뺏으려다 부러뜨리는 짓만 않으면 함께 강을 건널 수 있다. 다소의 생각 차이와 싫고 좋음을 시비하고 가리더라도 배가 뒤집혀 함께 다 죽는 일은 없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라는 나룻배는 물살 센 강 가운데로 들어가면 갈수록 좌우의 쏠림과 노 빼앗기 투쟁과 배 바닥 구멍 내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배 바닥에 구멍을 뚫고 노를 빼앗아 부러뜨리려 하는 자가 보여도 눈을 감고 왼쪽으로 몰려 앉으라고 선동하거나 오른쪽으로 쏠려 앉으라고 위협하는 자가 설쳐도 아무도 막으려 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이쪽에 앉은 승객을 나쁘다 심판하고 저쪽에 앉은 승객은 옳다며 제멋대로 재판해도 가려주는 이도 없다. 그런 혼돈과 무질서 속에 나날이 질서는 깨지고 보편적 상식은 비틀려가고 있다. 판관(判官)도 보이지 않는다. 나룻배 위의 질서를 심판하고 통제할 뱃사공은 이미 레임덕 속에 제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다. 솔로몬이 치매에 걸리고 포청천들은 숙취로 곯아떨어진 듯한 상황이다.

여의도와 사회와 학교와 법정(法廷)에는 합리적 상식과 이성이 사라진 대신 비상식, 폭력, 저주, 배타적 이기심이 휘덮고 있다. 몰상식이 상식을 깨고 지성은 폭력 앞에 꿇고 인간성은 욕설과 저주 앞에 무너지면서 공동체 구석구석이 부러지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만 부러뜨렸지만 곳곳에 번지고 있는 '인민재판' 바람은 나라 전체를 흔들며 국기(國基)를 부러뜨리고 있다. 정치나 이념적 분쟁일수록 옳고 그름은 상식과 법리(法理)가 아닌 떼거리 폭력과 적대세력 간의 강약에 의해 판가름난다. 이른바 인민재판이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벼슬 이름에는 '교육'자가 붙었지만 저지른 행동을 보면 교육자적인 정신은 썩은 사람이다. 그가 벌금형 받고 풀려나온 날 하루 종일 밥맛이 떨어져 커피만 마셨다는 사람이 꽤나 있었다. 물론 반대쪽에선 만세 부르고 박수 친 이들도 있었다. 변호사 수준으로 따질 것도 없다. 그저 '석방' 소식을 듣고 보는 순간 '어! 이게 뭐야'라는 첫 느낌과 심정이 가장 정확한 민심의 심판이다. 꼬불꼬불 비틀고 꼬아서 써낸 100마디의 궤변 같은 판결문보다 '이건 아니다'라는 민심의 한마디가 더 명확한 판결이란 뜻이다. 확정 판결 난 사건조차 한 편의 영화(부러진 화살)로 비틀면 판사는 법원 조직법까지 위반해 가며 인터넷 폭로전에 끼어드는 세상. 여론과 네티즌이 떠들어댄다고 덩달아 들썩거리고 반응하는 사법부의 권위와 지성이 '인민재판' 앞에 꿇고 있는 꼴이다.

개혁 정치하겠다는 야당 대표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난 범죄자(정봉주 전 야당 국회의원)를 '구해 내야' 한다며 떼를 몰고 다닌다. 그들은 대법원을 재(再)재판하는 태(太)법원인가? 3심 재판까지 끝난 범죄인을 다시 정치적 세몰이로 감옥에서 꺼내려 드는 것이 인민재판 아니고 무언가. 목에다 개패를 달고 용수를 씌워 모욕을 가했던 모택동의 문화혁명 때 북경대학 교수 등 수십 명이 인민재판의 치욕과 수모를 못 견뎌 자살했던 상황이 재연될 판이다. 문화혁명의 음기가 잠복된 우리 사회도 드디어 판사 집에 돌이 날아드는 세상이 됐다. 반대의 판결을 했다면 그때는 또 다른 쪽에서 돌을 던졌을 것이다.

민심과 동떨어진 '나꼼수 판결'이 많이 나올수록 날아들 돌멩이 숫자도 늘어날 것이고 특정 세력의 위세와 특정 지역 조직 문화에 '쫄아서' '이상한 재판'을 해댈수록 인민재판은 더 기세를 부리게 돼 있다. 그러고 나면 그다음엔 어떤 세상이 찾아올 것인가. 뻔하지 않은가. 떼거리 숫자가 더 많고 더 극렬하고, 더 폭력적인 세력의 인민재판에 의해 세상이 움직여지고 결국 배는 그들이 저어가는 쪽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인민재판에 의해 흘러가는 배의 끝은 어디에 닿을까. 망국과 숙청의 항구다. 인민재판 세력에 의해 더 이상 대한민국이 부러지지 않으려면 올 4월과 12월, 선거의 향배를 좌우할 20~40대들이 일부 종북 세력들과 극우 파쇼들의 선동에서 깨어나 썩은 보수와 위장한 진보에 속지 않아야 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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