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부러진 사법부

지난주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 개봉 1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우리나라 사법부를 그로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소식에 어떤 영화인지 궁금했다.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어떤 점을 보았기에 공정성 심판을 해야 할 주체인 사법부를 오히려 심판대에 올렸을까.

영화는 2007년 소송 당사자였던 대학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담당 재판장을 향해 '석궁테러'를 가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은 "90% 사실에 근거했다"며 특권의식과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사법부를 정조준했다.

영화에서 그려진 판사들은 시종일관 고압적인 자세로 오만하기 그지없다. 동료인 현직판사가 피해자이기 때문일까. 검사와 한통속이 돼 피고인을 오만하게 재판하는 모습은 예전 권위주의 시대 판사의 모습 그대로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합리적인 요청에도 판사가 검사에게 사실을 밝힐 것을 요청하지 않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실제로 법정에서 판사가 전문가를 불러 실험한 과학적 결과를 부정하고, 피해자의 혈흔 검증도 거부하는 상황이 연출된다면 어찌 됐을까. 게다가 결정적 물증이 사라진 경위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피해자인 동료 판사의 말만 근거로 판결문을 써내려가는 모습을 보였다면 말이다. 그 재판의 일방성은 당연히 도마 위에 오를 것이며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공개하는 본보기가 됐을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너무 한쪽의 사실만 가지고 만들었다. 해당 판결문을 반드시 읽고 봐야 한다"는 일선 판사들의 푸념이 이해가 됐다. 최소한 판결문을 한 번쯤 봤더라면 영화가 너무 몇 가지 근거만 가지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는 느낌이 들었을 터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도 '팩트'와 '픽션'은 구별할 줄 안다. 이 영화에 왜 일반 국민들이 몰입하고 공분하는지에 대해 사법부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판사가 누군가. 억울한 사람들의 심정을 읽어내는 것이 판사의 양심이 돼야 한다. 행위 자체에 대해서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담긴 절규를 듣는 것이 판사의 책무다. 그래야만 국민의 신뢰 위에 사법부가 존재하고 그것으로 법치주의의 뿌리는 튼튼해지는 것이다. 더욱이 이 영화의 실제 인물은 석궁을 들고 재판장의 집에까지 찾아간 사람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석궁을 들고 갈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 문제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이라는 감정을 먼저 보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속 시원하다고 했다.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책임은 법의 권위를 스스로 끌어내린 사법부에 있다. 영화를 본 한 남성은 "최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례처럼 돈을 받은 사람에겐 실형 선고를 내리면서 정작 돈을 준 사람은 구제되는 현실이 우리나라 재판"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말단 직원에겐 2억~3억 원만 횡령해도 실형을 선고하면서 대기업 오너는 수백억, 수천억 원을 횡령해도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법원의 관행에 메스를 들자는 얘기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매번 재판부를 향해 테러를 가하고, 영화에서처럼 가해자가 정의의 투사처럼 그려진 점은 지지할 수 없다. 게다가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당 판사 신상털이를 일삼고 근무지가 아닌 판사 개인 집에까지 우르르 몰려가 계란 투척을 하는 것은 몰상식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사법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저항권은 좀 더 진중하고 세련돼야 한다. 사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은 훌륭한 판사를 떠나게 할 수도 있다.

법조계 내부에서 지난해 '도가니'에 이어 '부러진 화살'이 다시금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을 보고 우리도 무엇을 반성하고 바꿔야 하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이참에 고쳐야 할 점이 뭔지, 국민들의 요구에 얼마나 눈높이를 맞췄는지, 소통에 부족했던 부분이 뭔가를 살펴 사법부가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부러진 화살' 앞에 줄을 서는 관객들의 모습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경고이자 개혁 촉구의 외침이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를 곱씹었으면 한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정욱진/사회1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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