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고속도로 휴게소 예찬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필자도 출장을 떠날 때면 잠시 차를 가져갈까 고민한다. 특별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있게 출발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가는 것이 편하다. 한편으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는 재미도 있다.

만약 출장지가 대전이나 서울이라면 꼭 들르는 휴게소가 있다. 바로 금강 옆에 있는 휴게소이다. 상하행선 모두 이용하기 때문에 항상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금강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할 수 있도록 배려한 테라스는 고속도로의 다른 휴게소에 비해 그 운치가 대단하다. 커피를 마신 후 시간이 좀 더 생긴다면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테라스를 중심으로 산책하듯 걷다보면 여러 가지 볼거리를 많이 만나는데 그 중 옥천의 예술적 향기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인 정지용이 꿈꾸는 멋진 신세계 향수 30리'라는 구조물이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으로 시작되는 '향수'의 작가이자 옥천이 고향인 정지용 시인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뜻밖의 즐거움이다. 그 구조물 바닥에 정지용의 시 '엽서에 쓴 글'이 보기좋게 그려져 있는데 이 시를 읽고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느낌이 참 좋다. 그들의 모습에서 시를 느낄 수 있는 여유가 공유되고 있음을, 그리고 예술은 여유에서 찾아야 제대로 그 맛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 특히 순수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와 예술인들은 클래식 공연 향유자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걱정한다. 휴게소에서 시를 읽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예술인의 그 걱정은 오히려 필자를 비롯한 우리가 제공한 것은 아닐까 반문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예술은 어렵고, 나의 삶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예술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예술의 표현에 있어 감상자들에게 여유를 찾아주기보다 예술인 자신의 오래된 고집만 내세운 건 아닌지, 만약 그런 것이라면 이제는 좀 더 편하게 다가서고 또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예술인이라면 자신이 사랑하고 열정을 쏟는 예술이 돈 많은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예술은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유만 알려주면 된다. 그 여유는 사치가 아니라 마시는 물처럼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것은 온전히 예술인의 몫이다.

우리의 짧은 이기심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희생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휴게소에서 진정한 휴식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그들의 배려가 고맙다.

여상법 대구문화예술회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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