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국악과 대중과의 거리

한때 유명한 명창의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광고가 크게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다. 이후 이 문장은 농산물, 수산물과 같은 먹거리 광고부터 우리의 전통문화에 힘을 실어주는 큰 역할(?)을 담당해왔다. 하지만 정작 이 외침에서 소외된 우리의 것들도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명절 반짝 특수 정도로 들을 수 있는 '국악'이 아닌가 싶다.

명절 특수라고 해봐야 TV에서는 씨름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민요 정도요, 박물관이나 공연장에서 전통놀이를 겸한 사물놀이와 같은 국악 공연의 일회성 행사에 그칠 뿐이다. 그래도 명절에는 국악이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자주 듣고 봐도 그나마(?) 다들 너그럽다. 하지만 이 명절을 제외하면 '국악'은 일반인들의 '지겹다, 어렵다, 잠 온다, 재미없다'는 편견과 선입견에 맞서 명절보다 수십 배 많은 날들을 저항해야 한다.

'국악'에 대해 가지는 이질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이는 친숙하게 느낄 만큼 자주 보고 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겠는가.

방송을 준비하면서 전라도 출신의 국악 연주자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접했다. '국악의 성지'라고 불리는 남원에서는 신호등과 청소차에서 민요가 흘러나온다고 했다. 게다가 이동식 공연 트럭이 있어 사전 신청만 하면 찾아가는 국악 공연 서비스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시장에서 그런 신명 나는 판이 잘 벌어진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신호등이 바뀌는 동안에 민요가 나온다고? 시장 앞마당에서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함께 있던 일행 모두가 자지러졌다. 그러자 말을 잇던 전라도 출신의 연주자는 '다른 곳은 안 그래요?' 오히려 의아해하고 당황스러워 했다. 국악에 대한 이런 예상 불가의 반응은 내게 많은 여운을 남겼다. 취재 본능이 발동해 남원시청에 전화를 했다. '사실입니까?' 하고 물으니 국악계장이라는 분이 머쓱해하며 '2년 전에 시책 사업으로 진행했으나, 사람들이 너무 식상(?)해 해서 지금은 잠시 중단하고, 춘향제나 판소리 200주년 행사와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 이벤트성으로나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요즘엔 들을 수 없다니 아쉬운 한편 매일 들어 식상하다는 말이 신선했다.

국악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처럼 느껴지셨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국악의 멋을 안 것은 고작 8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그 시작은 지역의 한 대금 연주자가 자신의 연습실을 공연장 삼아 풀뿌리 문화 운동 차원에서 마련한 가야금 연주회에서였다. 좌식 연주회인데다가 연주자가 1m 앞에 앉아서 가야금을 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던 그날의 연주는 가야금이 주는 먹먹하고 울컥한 여운을 내 몸에 깊이 아로새겼다. 이후 국악 공연을 관심 있게 찾아보면서 국악은 '악가무일체'(樂歌舞一體)라 하여 춤, 노래, 연극, 몸짓이 하나로 융화된 형태였다는 사실도 배우게 됐고, 덕분에 국악 공연이 어느 공연보다 볼거리, 즐길거리, 들을거리가 다양하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국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 여기저기 묻고 다니자, 아는 분이 "방송에선 국악을 왜 자주 안 다루느냐"며 볼멘소리를 전한다. 방송 아이템을 선정하는 데에는 대중의 관심이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취향으로 방송을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답답했다. 공연의 비중이 클래식이 더 높지 않으냐며 항변했지만, 아쉬운 마음이야 다를 리 없다. 다행히도 올해에는 '국악'을 만나고 즐기는 공연이 조금 더 늘 전망이다. 개인과 단체, 공연장을 비롯해 대구시까지 국악이 가지는 의미와 재미를 다채롭게 풀어내고자 하는 계획들을 취재 중에 접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대구시립국악단 화요상설공연에서 만난 20대의 대학생이 "국악은 그래도 온 가족이 들을 수 있잖아요"란 말을 인터뷰 말미에 덧붙였다. 함께 누릴 수 있는 음악이 많지 않은 시대!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음악에 국악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긴 기회였다.

음악의 편식을 권하는 게 아니다. 클래식도 좋고, 재즈도 좋고, 뮤지컬도 좋고, 오페라도 좋다. 다만, 우리의 소리에도 조금의 관심은 남겨두고 살펴보자는 얘기다. 덧붙여 우리의 종묘제례악, 판소리 그리고 가곡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사실도 상식으로 기억해 두자. 이런 관심과 상식만으로도 대중과 국악의 거리 좁히기가 이미 시작된다.

성교선/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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