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대구경북학을 만들자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면서 각 지방은 자기 지역의 정체성에 대해 부쩍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방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지방자치라고 한다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통해서 각 지방은 자신의 지역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잠재력을 찾으려 노력해 왔다.

이런 움직임은 각 지방에서 '지역학'의 등장을 자극했다. 그 결과 서울학, 인천학, 제주학, 부산학이 태동하였다. 서울학은 1993년에 정도(定都) 600년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육성되었고, 부산학은 학계에서 그 필요성이 논의되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 구체화되었다. 인천학은 지방선거 과정에서 공론화하여 2002년에 제도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제주학은 독특한 지역성에 관심을 가진 외부 학자들에 의해 훨씬 이전에 생겨났지만, 이것 역시 1990년대 초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활성화되었다.

다른 지역의 동향과 비교하면, 대구경북에서는 지역학과 관련하여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아쉬운 일이다. 지역학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실 대구경북이 가장 앞서 있었다는 점에서 작금의 대구경북 지역학의 성과 부재는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1985년 이 지역의 지식인들은 '지방사회연구회'를 만들어서 지역의 정체성과 비전을 모색하였다. 이 연구회는 바로 지역학의 선구자였다. 그 뒤를 따라 다른 여러 지방에서도 지역연구회가 결성되었다. 부산의 지역사회연구회, 전주의 호남사회연구회, 광주의 전남사회연구회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후 대구경북의 지역학은 뚜렷한 진전이 없었다. 지방사회연구회를 이은 대구사회연구소에서는 대구경북학과 관련한 몇 번의 내부 논의와 워크숍을 개최하였고, 그것을 통해 지역사회의 공감대를 끌어내려고 노력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성과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대구경북연구원에 대구경북학센터가 만들어졌으나 현재 뚜렷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또한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에 만들어진 '로컬리티 연구회'를 위시하여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지역 역사연구, 지역 개발연구 분야 등에서도 대구경북학과 관련한 다양한 고민과 노력들이 있었으나 모두 분절적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이제 이런 업적들을 토대로 '대구경북학'이라는 지역학 만들기를 제안한다. 대구경북이라는 지역사회의 특성을 보편성과 특수성의 맥락 속에서 균형 있게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적 근거와 과학적 인식에 바탕을 둔 종합적 틀 속에서 그동안의 연구물들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화 이후 이 지역의 독특한 정서적 흐름과 관련하여 대구경북의 정체성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주장들은 '인상기적' 진술에 불과하다. 이제 그것을 뛰어넘어 대구경북의 정체성을 객관화할 수 있는 연구 대상과 범위, 그리고 방법론을 가진 대구경북학을 만들어야 한다.

부산학, 인천학, 서울학, 제주학의 경험을 보면, 지역학의 발전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통해 그 계기가 만들어졌다. 1990년대 민주화와 지방자치 실시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짐으로써 지역학이 성장 발전하였다. 대구시와 경상북도도 '대구경북학'을 만드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가지길 희망한다.

각 지역에서 지역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기구로 '지역발전연구원 부설 연구센터' '대학 연구소'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는 학회가 지역학 연구의 또 하나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구경북에서도 이런 모델을 참조하여 대구경북학을 육성해야겠다. 다른 지역에 비해 뒤지고 있는 '대구경북학'에 대한 민'관'학의 각별한 관심을 촉구한다.

김영화/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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