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향하여 전원생활을 시작한 것이 어언 네 해째로 접어들었다. 무릇 세상사가 다 그러하듯, 살아보니 좋은 점도 많지만 나쁜 점도 적지 않다. 그 중 나쁜 점의 한 가지는 시장이 먼 탓으로 생필품 조달에 불편을 겪는 일이다. 하여 가꾸는 재미도 느껴볼 겸 웬만한 채소는 직접 갈아서 먹는다.
손바닥만 한 빈터에다 가지며 호박이며 방울토마토 등속을 갖추갖추 심었다. 반평생을 먹물만 만지며 지내왔으니 농사에는 완전히 젬병이다. 이웃에 물어물어 심고 가꾸며 딴에는 애정을 쏟아 보지만, 수십 년 세월을 흙과 씨름하며 잔뼈가 굵은 토착농군을 따라잡는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 아닌가. 심는 시기도, 비료 주는 때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게다가 농약을 치지 않으니 이웃 밭의 벌레들까지 죄다 모여들어 잔칫상을 벌이기 일쑤다. 당연히 수확량도 적을뿐더러 때깔도 나지 않는다.
작목반에서는 겨울철 특작으로 딸기 재배가 한창이다. 열매를 딸 임시가 되면 때깔이 좋으라고 약을 친다. 심지어 겉표면에다 에나멜 성분을 발라 반지르르 윤을 내기까지 한다. 그래야 상품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유기농 과채는 볼품이 없다. 볼품이 없다 보니 자연 상품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이 벌레 먹은 먹을거리가 몸에는 좋은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오랜만에 친구 K를 만났다. 얼굴에 자르르 윤기가 흐른다. 돈이 붙으면 얼굴에서부터 표가 난다더니 그새 돈깨나 벌었는가 보다. 하지만 이 돈이 들어 오히려 건강을 망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아왔다. 돈이 있다 보니 값비싼 육류를 즐겨 찾게 되는가 하면, 거기다가 혀의 즐거움을 뿌리치지 못해 과식을 일삼기 때문이다. 자연 얼굴에 기름기가 돌게 되고, 기름기가 흐르니 겉으로는 얼굴이 좋아 보일 수밖에 없다.
얼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 누구든 괜히 기분이 올라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말이 오히려 욕이 됨을 반평생을 살아올 때까지 미처 몰랐다. 그것은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는 위험신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항용 겉으로 번지르르하게 포장하는 말에 약하다. 때깔 좋은 과채가 몸에는 나쁘듯, 좋아 보이는 얼굴이 건강에는 해롭듯, 화려한 말 속에는 치명적인 독소가 들어 있다. 듣기 좋은 사탕발림에 속아 몸을 버리고 재물을 날리며 인생을 그르치는 일이 주위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명심보감 정기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나의 좋은 점만 말하는 사람은 나의 적이요 나의 나쁜 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참으로 두고두고 세상살이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가르침이 아닌가 한다.
곽흥렬/수필가
댓글 많은 뉴스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원희룡 "대통령 집무실 이전, 내가 최초로 제안"…민주당 주장 반박
한동훈 "尹 대통령 사과, 중요한 것은 속도감 있는 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