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9층. 소아암 환자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가장 어린 아이는 생후 8개월 된 양성찬 군이다. 성찬이의 병명은 '간모세포종'. 간 속에 악성 종양이 생긴 것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병이다. 아프다는 말도 할 수 없는 성찬이는 벌써 항암치료를 5차례나 받고 머리카락이 다 빠졌고, 2주 전에는 간에 있는 종양 제거술까지 받았다. "우리 성찬이 돌잔치까지 병원에서 해서는 안 되는데. 하루빨리 나가야 하는데." 엄마 이성애(40) 씨가 아들을 꼭 안았다.
◆간암에 걸린 아기
성찬이가 또 눈물을 흘렸다. 품에 안긴 아들을 침대에 내려놓으려고 할 때마다 엄마 품을 떠나지 않으려고 울부짖는다. 병원에 입원한 뒤 새로 생긴 버릇이다. 지난달 25일 아들은 간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10㎏도 안나가는 작은 몸뚱이 안에서 둘레 13㎝ 크기의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항암 치료로 종양 크기를 줄인 뒤 간 40%를 떼어내는 수술을 아들은 잘 견뎌냈다. '빡빡 머리'가 된 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힘들었던 항암치료가 생각나 가슴이 저민다. 수술 뒤 중환자실에서 6일을 보냈고, 일반 병실로 옮겨온 뒤 아이도 조금씩 기운을 되찾고 있다.
성찬이를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애가 참 순하다"고 칭찬했다. 잘 보채지도 않고 변을 봤을 때도 울지 않아 언제 기저귀를 갈아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지난해 추석 친정에서 만난 친언니가"성찬이 배가 너무 크다 빵빵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남자 아이여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는"얼른 병원에 데려가 보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언니의 예상이 맞았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 성찬이는 '간모세포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우리집에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딸의 질투
그날부터 우리 가족의 병원 생활도 시작됐다.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남편(47)과 내가 번갈아 가며 성찬이 옆을 지켰다. 아들이 어른도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아들의 병을 내가 가져올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힘든 치료 탓인지 아이의 성장도 더뎠다. 100일 때 6.5㎏이었던 성찬이의 몸무게는 만 8개월인 지금 7.7㎏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가벼운 아이를 안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얼마 전 큰딸 이솔이(6)가 단단히 화가 난 적이 있었다. "엄마 아빠는 성찬이만 좋아해!" 여섯 살 난 아이에게 부모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내 욕심이었다. 매일같이 병원에 있는 엄마 때문에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모두 동생에게 갔다고 생각해서인지 이솔이가 심술을 부린 것이다. 공평하게 사랑을 나눠주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한번은 또 이솔이가 눈물을 보였다. "엄마, 요즘 하나님이 너무 바쁜가봐. 내 기도도 안 들어주고." 성찬이가 항암치료를 끝내고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이솔이는 혼자 기도를 시작했다고 했다.'우리 동생이 앞으로 병원에 안 가게 해주세요. 다시는 안 아프게 해주세요.' 그랬던 동생이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자 이솔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며 내게 투정을 부렸다. 동생을 위해 몰래 기도하는 딸의 모습을 뒤늦게 알고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성찬아, 빨리 나아라
성찬이의 병 때문에 우리 가족은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병원에서 "조금만 늦게 병을 알았다면 암이 전이돼 손도 못 써봤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하필 내 아이가 이런 병에 걸렸을까'하는 원망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병의 존재를 알게 돼서 감사하다'는 안도의 한숨이 먼저 터져나왔다.
내 아들에게 미안한 것이 있다면 조금 더 능력 있는 부모가 되지 못한 것이다. 보증금 1천500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방 두 칸짜리 집에 지내는 우리 가족 형편에 수천만원 가까이 나올 미래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벅차다. 점심값이라도 아껴보려 아이를 남편에게 잠깐 맡겨 두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지만 이마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성찬이가 소아암 환자로 등록돼 의료비 지원은 받을 수 있겠지만 당장 생계가 걱정이다. 성찬이 간호 때문에 남편도 일을 못하고 있는데다 남편과 내가 젊고 건강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아직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엄마 품에 안겨 곤히 자는 우리 성찬이에게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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