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눈물의 오까네(돈, 선불)'

일본에 '눈물의 오까네(돈, 선불)'라는 말이 있다. 평생을 바쳐 일군 기업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매각하거나 경영이 어려워 불가피하게 팔 수밖에 없는 창업주에게 인수자가 돈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눈물의 오까네를 받는 기업인은 오직 기업이 잘되기만을 바라며 지분이나 또 다른 이익 챙기기를 하지 않고 인수자에게 "기업을 잘 부탁한다. 잘 키워달라"며 눈물짓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자신의 삶, 목숨과도 같은 기업을 넘기는 창업주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눈물의 오까네는 창업주가 기업을 키우기 위해 애착과 열정을 쏟아부은 데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다. 이는 성공한 사람, 가진 자의 '여유'이기도 하겠지만 기업인의 '양심'이기도 하다.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기업으로 불렸던 글로벌 기업 일본 소니사(社) CEO를 지냈던 기업인은 퇴임 후 모든 것을 버리고 사찰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모든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무소유'의 스님이 됐다.

앞선 일본의 기업과 기업인 문화는 최근 한국 재벌가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해외 언론이 글로벌 기업으로 주목하는 한국 재벌가들은 계열 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를 넘어 떡볶이집, 빵집, 순대집까지 손대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영역까지 다 해먹겠다는 식이다. 마치 넘쳐나는 에너지와 돈을 주체하지 못해 재벌 스스로도 제어가 안 되는 형국이다.

대기업의 탐욕에 사회적 반감이 확산되자 일부 기업은 '빵집' 철수를 결정했지만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한 경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20대 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사는 36%, 자산은 54.2%나 늘어났다. 상위 그룹일수록 계열사와 자산의 증가 폭이 컸다. 상위 10대 그룹의 계열사는 40.8%, 자산총액은 55.3%, 그리고 상위 5대 그룹의 계열사는 51%, 자산총액은 59.1%가 늘었다. 우리 기업 환경은 몸집이 큰 그룹일수록 덩치 불리기에 안성맞춤인 나라인 셈이다.

우리 재벌가들이 '공정한 게임'을 통해 사업 파이를 키운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비상장 계열사를 설립한 뒤 회사 주식을 오너 일가 등에 넘기고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은 당연한 경영방식이 돼 버렸다.

또 해외의 특허는 로열티를 주고 사오면서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은 마구 갖다 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09년 조사 결과를 보면 대기업으로부터 기술 자료를 요청받은 중소기업 중 기술 탈취나 유용을 경험한 곳은 22.1%에 달했다. 물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해외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고 국가의 부를 짧은 시간에 쌓기에는 대기업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문제는 대기업들이 무차별적인 몸집 불리기를 하고 있지만 고용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돈이 실핏줄처럼 곳곳에 돌지 않는 데 있다.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작년 연말 기준으로 비정규직이 800여만 명에 이른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진입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측보다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것이 대기업 내부의 설명이다. 한 대기업 종사자는 20년 이상 근무한 현장 근로자의 경우도 잔업과 특근을 제대로 하면 연봉이 1억 원 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직원들끼리 조금씩 양보하고 시스템만 개선하면 1천여 명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업 노조는 사실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진입을 회사보다 앞서 막고 있다는 것이 그곳 인사부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자신들은 현재 정규직이지만 자신의 아들, 딸이 비정규직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경제의 실핏줄인 중소기업과 서민, 지방에 돈이 제대로 안 돌고 성장은 있지만 고용은 안 늘다 보니 대기업을 제외한 경제가 골병들고 있다.

재벌의 문어발 경영은 IMF 구제 금융을 부른 주요한 원인이었다. 재벌들의 탐욕은 그들 스스로에게도 이롭지 않거니와 국가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회 및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이념'세대'지역'계층'노사 간에 사회갈등이 한꺼번에 분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갈등을 슬기롭게 헤쳐나가지 못하면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해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기업'국민 간 대협약과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는 총선과 대선의 공약에서 갈등 해소의 단초를 만들어야 하고 국민은 냉철한 시각으로 '심판의 칼'을 써야겠다.

이춘수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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