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태자(麻衣太子)가 1천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할 조짐이다. 매일신문이 지난해 9월 14일자에 안동시 도산면 일대에 전해져 내려오는 마의태자 전설과 지명유적을 필자와 함께 발굴해 보도하면서 조짐이 시작됐다.
이후 요즘 한창 추진 중인 3대문화권 사업의 일환으로 마의태자길이 조성되고 있다.
또 지역 한 방송사도 창사특집으로 '마의태자 천년 만에 안동에서 부활하다'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마의태자에 대한 조명이 가시화되고 있다.
마의태자가 안동에서 이렇게 부활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곳이 실제적으로 신라부흥운동의 산실이었다는 근거가 작용한다. 당시 승자였던 고려 측 입장이 반영된 삼국사기가 마의태자를 금강산에 들어가 초근모피로 연명하다 생을 마감한 유약한 인간으로 그렸다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마의태자는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역사를 개척한 위대한 존재의 모습이다.
안동시 도산면 용두산 일대에 남아있는 신라리, 신라의 남쪽이라는 의미의 신남리, 태자사, 신라재, 마의태자의 한을 담고 있다는 달래재길, 월오관, 나라를 세우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함의를 품고 있는 건지산과 투구봉, 용수사의 마의당 등 다양한 지명유적과 전설은 마의태자가 고려조정에 순응한 것이 아니라 항거했다는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마의태자의 신라부흥운동 역사는 단순한 전설이나 신화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기록에서 전해지고 있다. 조선조 인조 때 문신이었던 김세렴(1593~1646)이 지은 '해사록'에는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을 마의태자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 측 기록인 '송막기문'에도 여진족의 추장이 신라인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1126년 송나라 수도를 공격해 휘종과 흠종을 포로로 잡아 여진으로 압송한 금군의 총사령관 이름이 김올출이며, 1987년 베르톨루치가 감독한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이름 또한 '아이신 쥐러', 즉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말라는 뜻의 '애신각라'였다.
중국에서 김씨 성은 매우 희귀하여 3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금나라와 후금 그리고 그들의 후예인 청나라 황실의 성이 신라 김씨라는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그 옛날 망한 나라 왕자의 원대한 포부가 반도를 넘어 찬란한 대륙의 역사가 되었던 것처럼 지금 안동에서 내딛고 있는 마의태자 부활 움직임 또한 하나의 거대한 역사를 쓰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는다.
(안동시 역사기록관'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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