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는 맛이 있다. 계절, 장소, 시간에 따라 격식을 갖춰 먹으면 더 맛이 있다. 그러나 아무 생선이나 날것으로 먹어선 안 된다. 생선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회, 탕, 찌개, 구이, 조림 등 다양하고 특별하게 조리해야 참맛이 난다. 아무리 좋은 곡의 노래라도 박자가 어긋나면 맛을 버리듯이 생선도 꼭 알맞은 요리방법을 택해야 제 맛과 멋을 낼 수가 있다.
바다 속의 고기는 태초부터 있어 왔지만 언제부터 사람들이 생선회를 즐겼는지는 분명치 않다. 중국은 2천500년 전 논어의 향당 편에 '회는 가늘어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 장안 편에는 제나라 장안이란 사람이 고향인 오나라의 농어회가 먹고 싶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11세기 송나라 사람 소동파는 복어 회를 먹어본 후 "그 맛, 죽음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으며 공자도 생선회를 즐겼다는 기록이 여러 군데 있다.
한편 일본은 1399년 무로마치 시대 교토의 한 신관의 일기에 생선회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사시미로 일컬어지는 일본의 생선회는 주로 무사 계층에서 유행되었다. 어느 날 한 장군이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조리장에게 맛난 요리와 귀한 술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조리장은 열 가지가 넘는 생선회를 메인디시로 하여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을 차려 내왔다.
그날 밤, 맛에 반한 손님은 주방의 조리장을 불러 횟감의 생선 이름과 요리 방법을 물었다. 조리장은 그날은 무난하게 설명을 마쳤지만 또 다른 손님이 올 경우 주인어른이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것은 바로 쟁반에 담긴 생선에 이름을 쓴 작은 삼각 깃발을 꽂는 것이었다. 사시미의 사스는 '찌르다' '꽂다'의 뜻이며 미는 생선의 살을 뜻하는 것으로 그때부터 생선회를 '사시미'라고 불렀다. 조리장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주인인 장군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우리나라는 고려 때와 세조 때 회에 관한 희미한 설명이 있긴 하지만 17세기 초 송만선이 쓴 '산림경제'에 '생선의 껍질을 벗기고 살을 얇게 썰어 천으로 물기를 닦아낸 후 생강과 파를 접시에 곁들이고 겨자를 양념으로 쓴다'는 것이 확실한 기록이다. 짤막한 이 글은 지금까지도 생선회를 치는 방법의 원안으로 회자되고 있다.
횟감 생선은 살이 단단한 놈과 살이 연한 놈으로 구분된다. 살점이 단단한 어종은 복어 넙치 돔 등이며 연한 어종은 참치 방어 농어 민어 등이다. 단단한 놈들은 콜라겐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씹으면 쫄깃쫄깃하고 맛도 좋다. 그래서 회를 뜰 때는 얇게 썰어야 하고 살이 연한 놈들은 두껍게 썰어야 씹는 맛이 좋아진다.
흰 살 생선은 고추냉이(와사비)간장에, 붉은 살 생선을 비롯하여 멍게, 굴, 오징어 등 패류는 초고추장에, 등 푸른 생선은 마늘 다진 것과 풋고추를 섞은 된장에 찍어 먹는 것이 좋다. 그리고 또 하나, 생선회를 먹을 때 가장 어울리는 술은 소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생선회 파트너를 소주 대신 와인으로 한 단계 올려주면 먹는 사람 스스로가 고급화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일반적으로 소고기 등 육류를 먹을 땐 레드와인을, 생선요리를 먹을 땐 화이트와인을 선호한다.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그동안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경험법칙'이라 얼버무렸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타카유키 타무라 교수팀이 그 이유를 밝혀냈다. 레드와인에는 철분 성분이 강해 그것이 해산물과 만나면 비린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분이 적게 들어 있는 화이트 와인이 생선회와 짝꿍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생선회를 먹을 때 막걸리를 곧잘 마신다. 언제 횟집에 갈지도 모르는 처지에 레드니 화이트를 따질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토요산방 도반들과 진해 용원으로 내려가 바닷가 식당에서 제철 만난 대구 2마리를 11만원에 흥정하여 회로 쳐서 먹었다. 난생 처음 먹어 본 대구회는 물컹거리는 게 그야말로 맛은 별로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친구들도 벽에 붙은 메뉴판만 쳐다보다가 대구회를 남기고 말았다. 대구는 탕감이지 횟감은 아니야. 암, 그렇고말고. 대구는 솥 안이 제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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