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장터는 언제나 시끌벅적하며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난다. 지난달 19일,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5일장이 서는 고령종합시장을 찾았다. 시장 입구에는 '꼬꼬댁~'하며 토종닭이 방문객을 맞는다.
흥겨운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고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포 한잔 곁들이며 회포를 나누는 모습도 정겹다.
읍내 장터에 들어서자 '처렁처렁' 쇳소리가 울리는 집 앞에 구경꾼들이 숨죽이며 서 있다. 대장장이가 근육으로 뭉친 팔로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내리치자 붉은 파편이 불꽃쇼를 하듯 튀었다. 장 보러 온 사람들은 '와~' 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대장장이 이상철(70) 씨가 53년째 해 온 일이다. 전통 방식 그대로 쇠를 달궈 담금질하고 다듬어 호미, 낫, 쇠스랑, 칼, 곡괭이, 손도끼 등 각종 농기구를 만든다. "칼 한 자루 얼마요?" "5천원입니다." 숙련된 대장장이의 솜씨로 빚어낸 농기구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가 만든 농기구에는 땀과 정성이 배었다는 입소문을 타고 칠곡'현풍'성주 등 인근 지역뿐 아니라 멀리 봉화에서까지 손님들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아버지로부터 곁눈질로 대장간 기술을 배웠지요. 당시에는 합천 삼가면, 가회면, 거창 신원면 등 5일장을 돌아다니며 농기구를 만들어 팔았어요." 이 씨가 대장간 일을 시작한 것은 15세 때부터다. 힘들었던 시절, 먹고살기 위해 대장간 일을 배웠던 열다섯 살의 소년은 이제 일흔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쇠를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 보니 한평생 하게 됐죠." 처음엔 아버지의 대장간 일을 도와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철이 들면서 대장간 일을 물려받지 않으려고 택시운전을 했다. 그러다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대장간 문을 닫게 될 처지에 놓이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운전대를 놓고 대장장이로 돌아섰다. 그렇게 쇠를 달구며 1남3녀의 자식을 길러냈다. 한겨울에도 30℃를 훌쩍 넘는 열기를 반세기 동안 견뎌왔다.
강인한 체력을 가진 이 씨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대장간 일이 힘에 부친다. 하지만 이 씨는 외롭지 않다. 자신이 그러했듯 옆에서 든든히 도와주는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힘든 대장간 일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곁에 오지도 못하게 했어요." 하지만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씨가 아버지의 길을 걸었듯 아들 준희(39) 씨도 3대째 '쇠 사나이'의 맥을 잇고 있다. 준희 씨는 가업을 잇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10년째 아버지에게 대장간 기술을 배우고 있다.
훌륭한 재질을 갖춘 쇠를 만드는 비결을 묻자 준희 씨는 "화덕에서 달궈 낸 쇠를 담금질하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며 "쇠는 담금질 정도에 따라 강도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쇠 모양을 만드는 망치질도 어렵지만 쇠의 강도를 내는 담금질은 고난도의 기술이다. 쇠의 재질에 따라 담금질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엌칼의 경우 벌겋게 달아 있는 쇠의 칼날 부분을 1㎜ 정도만 물에 살짝살짝 담그면서 담금질을 하는데 웬만한 기술로는 이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버님은 이 대장간 일을 위해서 태어나신 분 같아요. 항상 곧이곧대로 땀과 정성을 다해서 만드니까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장장이가 된 준희 씨이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큰 산이라고 말한다.
준희 씨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1남3녀를 두고 있다.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 줄 생각이 있냐고 묻자 "아들이 이제 다섯 살이라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가업을 쭉 잇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전통 대장간의 맥을 잇고 있는 곳은 고령, 의성, 원주, 남원 등 전국 4곳뿐이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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