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라져 가는 세상풍경] 문어오리기·한지공예의 예술

잊혀가는 추억의 풍경 중 우리 전통의 것도 있다. '문어오리기'와 '지승공예'다. 이 두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문어오리기'달인 신덕순 씨

# 1m 문어 다리에 국화꽃 20개 '활짝'

대구 서문시장 건어물상가 신덕순(70·대덕상회) 씨. 신 씨는 '문어오리기'로 우리의 것을 지키고 있다.

'문어오리기'는 말린 문어 살을 얇게 도려내 갖가지 문양으로 잔치상과 제사상을 장식하는 전통음식 기법이다. 옛날 여염집 제사에서는 주로 국화꽃이나 학, 소나무를 많이 만들었다.

"문어오리기를 배운 적도 없고 용어조차도 몰랐어요. 우연한 기회에 문어와 인연을 맺었을 뿐이에요." 40대에 혼자가 된 신 씨는 손과 발이 꽁꽁 어는 시장 난전에서 건어물을 팔며 딸 셋을 출가시켰다. 손님이 없을 때 틈틈이 문어를 오리며 지내온 세월이 벌써 30년을 훌쩍 넘겼다.

신 씨는 납작하게 눌린 문어의 다리에 25번 정도 실낱같은 칼질을 내 둥글게 말아 국화꽃을 완성한다. 보통 1m짜리 문어면 다리 길이가 70~80㎝쯤 되는데 그 다리에 20개의 국화꽃이 활짝 핀다. 문어오리기는 살이 너무 마르면 부서지고 너무 젖으면 늘어지기 때문에 약간 꾸덕꾸덕할 때 문어를 잡고 쉬지 않고 손을 놀려야 한다. 1m짜리 문어 한 마리에 국화꽃을 놓는 데 꼬박 5시간이 걸리며 하루에 달랑 2개 정도 완성한다.

신 씨는 요즘 손에 힘이 떨어져 문어오리기가 힘겹지만 기계로 찍어내는 문양과는 확연히 다르다. 세월의 흔적과 정성이 빚어낸 신 씨의 손 솜씨를 기계는 절대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승공예가 신계원 씨

# 종이 찢어 만든 멋스러운 공예 반해

"지승공예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붓으로 글을 쓴 뒤 남은 자투리 한지를 이용해 필통과 같은 소도구를 만들면서 비롯됐습니다."

지승공예 기법은 비벼 꼰 한지 가닥을 엮어서 만드는 방법과 삼베나 두꺼운 종이로 일정한 틀을 먼저 만든 후 표면에 꼬아 두었던 지승을 풀로 붙여 다양한 문양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이때 한지의 먹물 글씨가 바깥으로 드러나게 꼬는데 다 꼬인 지승에 나타나는 푸른 듯 검은 빛이 지승공예의 멋스러움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솔가 신계원(77·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씨는 1979년에서 1980년 사이 스승인 김영복(충남 무형문화재 제2호'작고)을 사사한 뒤 33년째 지승공예의 맥을 잇고 있다. 신 씨가 지승공예를 배우게 된 계기는 교편을 잡던 중 우연히 신문지상에 소개된 스승의 작품을 보고 호기심이 일면서부터다. "못 쓰는 고서를 찢어 만든 지승공예품에 끌려 무작정 찾아가 배우게 됐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종이를 꼴 때 손에 물을 묻혀야 하지만 그래도 매일 꼬박 8시간씩은 작업에 매달립니다."

신 씨가 만드는 지승공예품에는 제한이 없다. 등(燈), 기러기, 오리, 닭, 하회탈, 향로, 베개, 필통, 나막신에 대금 등 전통악기까지…. 특히 지승으로 만든 대금은 직접 연주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지승공예법으로 짠 요강에 옻칠을 하면 가볍고 소리도 나지 않아 조선시대 아낙네들이 가마를 타고 나들이 갈 때 필수품으로 인기였다고 합니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2003년 청주 국제공예 공모전 특선, 2007년 종이대금으로 국가상징공모전 특선, 국내 각종 공예전에서 장려상을 포함해 35차례나 수상했으며 '지승공예의 기법과 응용'이란 책도 펴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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