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가다. 나는 삶의 대부분을 화가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해왔다. 화가의 길에서 자주 가족과 사회로부터 투쟁의 시간과 마주한다. 그 중 가장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이 여성과 남성의 분류에서 나온 편견이다. 인간을 다만 여성과 남성만으로 분류하여 한계를 지어놓은 불합리에 저항한다. 그렇다고 남자가 아닌 것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 이러한 분류가 불필요한 시점에도 어김없이 이뤄지는 폐단 때문이다. 이들 앞에서 내 의지는 항상 외롭다.
근간에 2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댄싱 퀸'을 보았다. 서울시장 후보 남편 정민과 댄스가수를 위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아내 정화와의 갈등이 돋보인 영화였다. 정민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인권변호사로 지내다 우연히 서울시장 후보자가 되었다. 댄스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아내에게 시장이 되면 돈 걱정 없이 편안하게 해줄 것이니 꿈을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왕년의 신촌 마돈나 정화는 댄스 가수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처절한 후보자 경쟁과정에서 정민은 아내와 가족은 다스리는 대상이 아니라 손잡고 동행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아내의 꿈을 위해 동조자가 된다. 여성과 남성에 관한 역사는 고정의 역사가 아니라 변화의 역사이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진화해 가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지금까지의 진부했던 여성의 지위는 기혼일 경우 단지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는 역할로서 누구의 아내와 누구의 엄마 이름으로 종속된 삶이었다면, 현대에는 한 개인으로서의 삶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여성의 책임과 임무가 커진 셈이지만 삶 안에 함께하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은 분명해졌다. 화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남성화가들은 경제적인 부담감을 지닌 삶을 사는 반면 여성화가들은 가사와 육아문제가 상주한다. 이들 중 어느 것도 경중을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화가의 치열한 작업 투쟁이 경시되는 현실과 마주칠 때 비참함마저 든다. 얼마 전 한 신문의 여기자의 칼럼에서도 이러한 예가 확인된 바 있다. 남성의 경제적 곤궁은 극대화되고 심지어 신화화되기도 하나 여성의 가사 부담과 육아의 고통은 사소한 일로 치부되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예술가는 작품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작품은 예술가의 투쟁적 삶이 반영된다. 여성화가도 치열하다. 많은 여성화가들은 생활고와 더불어 가사와 육아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길을 걷고 있다. 여성으로 배려하는 듯 하는 편견은 이제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아야 한다.
여성화가로 대접받을 때면 아주 우울하다. 여성의 특징과 남성의 특징이 다르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아름다운 분류가 특성을 지나쳐 아름답고 소중한 본질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어리석음 때문일 것이다. 예술행위는 여자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인간으로서 근원적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의 수단인 것이다. 여성도 남성도 작업을 통해서 끊임없는 자아탐구와 성찰을 거듭하여 그 답을 찾아나갈 뿐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배려 없이 태연하게 삶에 전진하고 싶다.
변미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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