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망가 공천결정 4년 전과 비슷하네

여야 공천개혁 경쟁 '데자뷰' 현상

'검찰' 대 '경제검찰'의 대결.

새누리당이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에 특수부 검사 출신인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을 내세우자 민주통합당이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장 출신의 경제학자 강철규 우석대 총장을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맞대결을 시킨 데 대한 평가다.

양당의 공천개혁 경쟁은 18대 총선 직전에 공천경쟁을 벌이던 4년 전과 닮았다.

'비리전력자 전원 공천배제'와 텃밭인 '영호남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는 18대 총선 공천에 앞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당이 내세웠던 원칙이었다. 이번에도 그때와 판박이처럼 똑같은 공천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각종 비리에 연루된 현역 의원을 배제하고 영호남 다선 중진의원들의 자진 용퇴를 촉구하는 등 50% 물갈이를 추진하고 있다.

대검중수부장을 지낸 안강민(한나라당),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박재승(민주당) 공심위원장이 정홍원과 강철규로 대체됐다는 점만이 다를 뿐 명망가 출신 외부 인사의 손에 공천의 칼을 쥐여주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긴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사건, 이명박 대통령 주변인사들의 측근 비리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 빚어낸 극단적인 정치불신을 극복하고 대대적인 정치권 물갈이를 요구하는 국민여론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강한 도덕성을 갖춘 공심위원장의 등장은 필수적이었다.

새누리당의 정 위원장은 30년 동안 갈아 온 사정(司正)의 칼날을 사정없이 현역의원들을 향해 휘두르고 민주통합당의 강 위원장은 재벌개혁과 공정거래 및 부패방지에 전력해 오면서 쌓아 온 '경제검찰'의 이력을 십분발휘하면서 개혁공천의 선명성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정 위원장은 평검사 시절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기사건'과 수서비리사건 등의 대형비리사건을 맡아 처리한 화려한 수사 이력을 갖춘 '깐깐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시절에는 매니페스토(공약선거) 도입을 주도하기도 했다.

반면 강 위원장은 경제학 교수 출신이지만 재벌개혁과 부패방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김대중 정부 시절 부패방지위원장, 노무현 정부 때 공정거래위원장 등을 지냈고 경실련 창립멤버로 현재 경실련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두 사람의 고향은 경남 하동과 충남 공주다.

강력한 개혁성과 지도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 인사들이 여당의 공천을 진두지휘하게 되면서 정치권에서는 '다시 저승사자가 온 것 같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국민의 기대만큼 공천물갈이를 주도할 수 있을지는 속단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18대 총선 때의 공천개혁 시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는 점도 공천 칼날의 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4년 전 '박재승 신드롬'으로까지 불렸던 박재승 위원장식의 공천혁명에 자극받은 한나라당 안강민 위원장이 공천 심사 막판 대구경북 등 영남권과 서울 강남 등 텃밭을 주요 물갈이 대상으로 삼으면서 논란을 빚은 사태가 재연될지 여부도 관심사다.

당시 안 위원장은 박희태'김무성'김덕룡 의원 등 친이계와 친박계의 상징적 거물급 인사는 물론이고 박종근'이해봉'이상배'안택수'임인배'권오을'정형근'권철현 등 영남지역 3선 이상 70%를 비롯한 62명의 현역의원 중 43%에 이르는 27명을 공천에서 탈락시키거나 자진용퇴시켰다.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 얻은 박 위원장의 칼날은 더 매서웠다. 그는 호남권 거물과 친노'친DJ 성향 인사들이라고 해서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씨와 박지원 전 의원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은 물론 안희정 충남지사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도 줄줄이 낙천대열에 합류했다. 민주당 호남 현역의원(30명)의 43%(13명)가 탈락했다.

공천혁명은 그러나 참담한 실패였다. '안강민식 공천쿠데타'는 '친박계에 대한 학살'로 불리면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반발을 불렀고 낙천한 친박 국회의원 21명이 살아 돌아오는 역풍으로 이어졌다.

'박재승발 공천혁명'도 결과는 나빴다. 정치신인들을 수도권에 대거 발탁했지만 대선 승리의 여세를 타고 뉴타운 개발 공약을 내세운 한나라당 신인들에게 적수가 되지 못했고 공천혁명의 상징이 된 박지원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 살아 돌아왔다.

결국 당선가능성과 정치적 자질과 역량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정치와 무관한 사회경력에 엄청난 가산점을 주면서 발탁한 정치신인들이 대거 국회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18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여야의 공천위원들이 곰곰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다시 시도하는 대폭적인 물갈이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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